우리나라는 ‘인쇄 문화 종주국’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세계의 목판 인쇄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직지심체요절’ 역시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렇듯 책과 독서, 출판의 역사는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출판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원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는 출판학자 부길만은 책 『우리 책과 한국 현대사 이야기』에서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책으로 조명한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의 독서’라는 챕터가 눈에 띈다. 해당 챕터에는 일제강점기에는 누가 책을 많이 읽었고, 어떤 종류의 책들이 많이 읽혔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학생이 최다 독자였고, 여성들은 매우 적었다. 여성 독자층이 두텁고 학생들의 독서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오늘날과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부길만은 “현재의 학생들은 입시와 취업 준비에 매몰된 채, 사회를 이끄는 독서운동은커녕 기본적인 책 읽기와 교양 습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꼬집는다.
물론 그의 지적처럼 당시 학생들은 ‘엘리트적 독자’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지금과는 달리 문맹자가 많고, 교육인구가 극소수였던 일제강점기 때 학생들은 이른바 ‘지식인’이었다. 그럼 그 시기 학생들은 어떤 종류의 책을 많이 읽었을까.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독서 경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1920년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10년대엔 독서 인구 자체가 적었고, 1930년대엔 검열이 강화되면서 출판에 제약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도 독서 경향은 시기별로 차이를 보인다. 부길만은 “1923년 경성도서관 개관 초기에는 문학‧사상서‧어학 등이 최다였고, 1925년 중반기에는 그것이 법률‧사회 분야로 옮겨갔는데, 종로 분관 시절인 1927년에는 다시금 문학‧어학 위주로 돌아갔다”고 설명한다. 문학 중에서도 소설의 인기가 특히 높았다. 근대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소설은 교양을 쌓고, 예술적 취미를 즐길 수 있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부길만은 “톨스토이의 『부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입센의 『인형의 집』, 셰익스피어의 『햄릿』, 위고의 『레 미제라블』 등 서구의 명작소설이 제일 많이 읽혔다. 한국 작가로는 『무정』 등을 집필한 이광수의 소설이 독자들의 압도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이 외에도 심훈의 『상록수』, 박계주의 연애소설 『순애보』 등이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였으며,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말봉의 『찔레꽃』과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등도 당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광수의 대표작인 『무정』은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로 ‘자유연애’와 ‘계몽’이 중요한 키워드이다. 봉건적 체제를 타파하고, 새 시대를 염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무정』은 청춘남녀의 관계를 통해 당시 격변하는 조선 사회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학생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한편 일제강점기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이광수는 ‘친일파’로도 유명하다. 부길만은 “(이광수는) 단순히 친일 협력이 아니라 철저히 일본인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스스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식 옷을 입고,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은 일본 정신을 가져야 한다’라는 주장까지 나아갔다”고 덧붙였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