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엄마’가 전하는 진실 너머의 풍경…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검사 엄마’가 전하는 진실 너머의 풍경…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7.1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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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검란(檢亂)이란 말이 자주 언론을 장식했지만 요즘처럼 검찰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적이 있을까. 뉴스만 틀면 나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 얘기, 그 대척점에 선 조국 전 법무장관, 추미애 전 법무장관 그리고 검찰 개혁. 코로나19로 하루하루가 버거운 서민 입장에서는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지치지도 않고 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무엇보다 책 표지에 적힌 ‘외곽주의자’라는 말에 시선이 꽂혔다. 사전적으로 외곽은 ‘바깥 테두리’를 말한다. 말하자면 외곽주의자는 ‘변두리’와 ‘언저리’에 존재하기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기성 틀에서 벗어나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아웃사이더 혹은 권력에 강하게 저항하는 반골은 아니다. 그저 번잡한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조용한 변방에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므로 외곽주의자 성향의 인간은 어떤 조직에 속해있든 소수파이자 비주류이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16년째 검사로 일하고 있는 여성. 대구 인근 지역 근무를 줄기차게 희망한 결과 ‘신라검사’로 불리는 사람. 특출한 재능으로 여러 사람에게 주목받는 삶이 아닌 조금은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서 ‘이끼’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는 외곽주의자. 바로 정명원 검사다. 그의 책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한겨레출판)의 부제는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이다.

언제나 진실을 탐문하고 추적하는 검사가 진실 너머의 풍경을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고 ‘그래, 얼마나 진실 너머의 일을 잘 말하는지 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왜냐하면 남들이 볼 때 조금은 ‘특수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일과 가정을 오가며 겪은, 자잘한 에피소드를 묶어놓은 책을 이미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의 ‘죄’는 대개 ‘별거 없음’으로 판결이 났다.

결국 그러한 종류의 책들이 주목받으려면 사안에 관한 ‘구체성’과 그것을 유연하게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그 직업 종사자만이 할 수 있는 재기 발랄한 ‘유머’가 있어야 한다. 이 책에는 그 세 가지가 모두 들어있다. 정 검사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의 중심도, 삶의 진실도 아니고 다만 늘 어느 정도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검찰청의 한 귀퉁이에서 분주했던 이끼의 이야기”라고 자신의 책을 소개한다.

특히 흥미로운 챕터는 ‘여성 검사’로서 겪은 일을 풀어놓은 「딥 블루 레이디를 위하여」이다. 그는 어떤 피고인으로부터 “저 미친 아줌마를 감옥에 처넣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후배들의 경우 “새파랗게 젊은 년이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냐”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그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검사장인 조희진 전 검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조 전 검사장은 어느 피의자로부터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뭘 안다고”라는 욕설을 들었다고 한다.

정 검사의 말처럼 무례한 피고인이 여성 검사에게 주로 하는 말은 ‘새파랗게 젊은’ ‘년’ ‘거짓말’로 수렴한다. 그는 “‘새파랗게’는 ‘젊은’을 수식하여 검사가 경험과 연륜이 부족한 풋내기라는 주장을 강조하고 있으며 ‘년’은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검사를 성별을 이유로 얕잡아 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며 “(이 욕설은) 젊은 여성 검사에 의해 실행되는 소추권의 행사를 불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 검사에 대한 차별적이고 비합리적인 시선은 검찰청 내부에도 존재한다. 정 검사는 초임 검사 시절 선배에게 “어린 여성 검사처럼 보이지 않게 하라. 말도, 옷차림도, 행동도”라는 충고를 들었다. 유난히 손글씨가 예쁜 어느 후배 여성 검사는 공소장에 들어가는 서명 때문에 부장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동글하고 귀여운 글씨체가 너무 ‘여성적’이라서 검사답지 않고 권위가 없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검사이자 동시에 ‘엄마’의 정체성을 지닌 작가가 자신의 애환을 풀어낸 「검사 엄마」 챕터도 눈길을 끈다. 큰맘 먹고 휴가를 낸 뒤,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행사에 참석하는 길에 “이제 내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나도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라는 아이의 말에 울컥하고, 레고를 가지고 놀던 딸과 아들이 다투다가 자신에게 다가와 “그래서 엄마는 누구 편이야?”라는 말에 “엄마는 언제나 정의의 편이지”라고 말하는 검사 엄마.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은 어느 검사의 사사로운 일상을 통해 오늘날의 여성 직장인이 겪는 고통과 딜레마를 입체적으로 길어 올린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이 책에 대해 이다혜 작가는 “원의 중심이 명백한 한국사회, 그것도 검찰이라는 조직에서 중심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워킹맘의 목소리. 그 누구도 세상살이의 고단함에 지지 않기를 응원하며 읽게 된다”고 평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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