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흔히 '컬렉터'라고 하면 오래된 유물이나 값비싼 예술품을 수집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오래된 사진 한 장부터 영수증, 일기, 편지 등 소소한 생활 자료를 수집하는 사람도 컬렉터에 속한다. 저자는 지난 30여 년간 역사의 흔적이 어린 자료를 수집한 컬렉터.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열네 가지 수집품을 소개하며, 거대 역사에 가려졌던 보통 사람의 역사를 생생히 복원한다.
독립문이 쇠락하자 일제는 1928년 거금 4,100원을 들여 대대적으로 수리했으며, 1936년에는 독립문을 고적 제58호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독립문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열망을 담은 기념물이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략) 일제 당국이 독립문을 보호한 이유는 그것이 일본이 아닌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것이고, 일본은 청일전쟁을 통해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도와줬으므로 오히려 이 문은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은혜를 과시할 수 있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각에서 다소 이해하기 힘들지만 청으로부터의 독립 과정에서 일본이 도움을 줬으므로 고마운 나라라는 인식은 독립문이 건립될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이어진다. <27쪽>
이 차는 30마력의 증기차이다. 대로변을 지나다가 이 차를 처음 본 한국인들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흩어졌고, 심지어 들고 있던 짐도 내팽개친 채 숨어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새로운 괴물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다. 짐을 싣고 가던 소와 말도 주인들만큼이나 놀라 주위의 상점이나 가정집으로 뛰어들었다. <78쪽>
"바가지 긁다"라는 표현이다. 이 말도 호열자와 관련이 있다. 호열자에 걸리면 고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이는 것 말고도 부적을 붙이거나 동네 어귀에 가시가 많은 아카시아 나무를 세워놓는 등 호열자를 쫓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바가지를 긁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호열자를 쥐통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당시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로 쥐를 쫓을 수 있듯이, 바가지를 드득드득 시끄럽게 긁으면 쥐통을 떨쳐낼 수 있다고 믿었다. 비록 원시적이긴 하지만 나름 창의적인 발상이었다. 시끄럽게 바가지를 긁어대는 소리는 쥐도 싫어했겠지만,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162쪽>
8월 25일 토 맑음
924고지로부터 751고지로 전진. 계속 전투가 치열함. 중대장 부상당함.
8월 28일 화 비
비는 계속해 내린다. 11사단 20연대는 884고지를 점령했다. 오늘도 포탄은 계속 떨어진다. 호가 무너져서 2명 부상을 당했다. 중대장이 없어 다른 날보다 더 바쁘다.
8월 29일 수 흐림
오늘도 적은 끊임없이 포를 쏟아 포진지에 두 방이 떨어져 2명이나 전상당했다. 전투는 계속된다. 6중대 공격했으나 성공치 못했다. <182쪽>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박건호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292쪽│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