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뭐지?’ ‘아!’... 삶을 빛내는 詩
‘어라?’ ‘뭐지?’ ‘아!’... 삶을 빛내는 詩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7.14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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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시(詩)는 자연 혹은 삶을 향해 일어나는 생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복잡한 세상의 다양한 현상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 시는 압축미가 관건인데, 압축된 활자 속에 담긴 다양한 감정이 읽는 이의 마음에 ‘툭’하는 멈칫거림을 이뤄낼수록 좋은 시로 평가받는다. 그런 이유에서 최영미 시인은 책 『시를 읽는 오후』에서 “쉬운 것을 어렵게 비비 꼬는 게 아니라, 어려운 것을 쉽게 표현하는 게 진짜 (시적) 재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재능을 지닌 시인들의 다양한 시를 알아본다.

우리 집 비밀번호/ □□□□□□□// 누르는 소리로 알아요/ □□□ □□□□는 엄마/ □□ □□□ □□는 아빠/ □□□□ □□□는 누나/ 할머니는/ □ □ □ □/ □ □ □// 제일 천천히 눌러도/ 제일 빨리 나를 부르던/ 이제 기억으로만 남은 소리// 보 고 싶 은/ 할 머 니 - 『팝콘교실』에 수록된 문현식의 「비밀번호」

사람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각기 다른 리듬을 날카롭게 포착해 마치 옆에서 보고 있는 듯한 생동감을 자아내는 시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이리저리 어렵게 꼬지 않은 문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내비친다. 문을 열고 대면하기 전 소리로 먼저 만났던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 ‘아~ 이래서 시를 읽는구나’ 하는 작품으로 상처받기 싫어 단단하게 얽어맨 마음의 장벽에 ‘툭’하고 균열을 일으키는,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는 순수함을 간직한 시다.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시합에 져 주곤 하였는데 눈치 못 채게 져 주느라 여간 애쓰지 않았습니다. 5전3선승제. 1세트는 내가 이깁니다. 2세트는 가까스로 집니다. 이때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부러 진 것을 알면 아이가 화낼 게 빤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트에 가서 듀스를 거듭하다가 힘들게 집니다. 그러고는 연기력을 발휘하여 분하다는 듯 화를 냅니다. 마른미역처럼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아이는 미안한 표정 지으면서도 한결 업된 기분 참을 수 없는지 탄력 좋은 공처럼 통통 튀면서 경쾌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배드민턴을 치면서 나는 들키지 않게 져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재무 「배드민턴과 사랑」

역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번지게 하는 작품이다. 부자(녀)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감도는 순간이지만, 이는 아버지의 의도된 계략. 자녀에게 어렵게 쟁취한 승리의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농도 짙은 사랑이 배어 나온다. 어릴 적 추억을 함께 쌓았던 아버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중략) // 답장을 쓴다/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 조은 「동질」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업을 정해 직장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시대. 하늘의 별을 따 달라는 것도, 달을 따 달라는 것도 아닌, 능력에 맞게 일만 하게 해달라는 건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5의 일을 하기 위해선 7의 자격이 필요하고, 때론 7의 자격을 갖췄어도 능력치 8의 경쟁자에게 밀리기 일쑤. 그래서 간절할 수밖에 없는 취업준비생의 마음을 동감하는 사람에게 시인은 따스한 온기를 전한다. 세상은 아직 따뜻한, 살만한 곳이라는 위로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시를 즐기는 김이경 작가는 책 『시의 문장들』에서 “시를 읽다 보면 으레 ‘어라?’하고 놀라고, ‘뭐지?’하고 궁금해하고, ‘아!’하고 감탄한다. 삼십 년 전에도 그랬고 일주일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시를 읽는 이유는 기분이 좋아서다. 뒤통수를 한 대 맞았는데 머리에서 분수가 솟는 기분이랄까. 이런 청량한 즐거움은 시가 아니면 느끼기 힘들다”며 “비록 몸으로는 살지 못하고 그저 마음뿐이라 해도, 그 문장이 있어 삶은 잠시 빛난다. 반딧불 같은 그 빛이,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은 적 없는 어둑한 인생을 살만하게 만든다. 그 빛을 잊었을 때조차 잔영은 남아 길 잃은 걸음을 비춘다”고 말한다. 비록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안개 낀 인생일지라도 작게나마 앞을 비추는 반딧불 같은 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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