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나 몰라라”... 유족 급여 나오니 ‘내가 부모’
“수십 년 나 몰라라”... 유족 급여 나오니 ‘내가 부모’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6.1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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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구하라 씨의 친오빠 구호인 씨가 지난 5월 22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구하라 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구하라 씨의 친오빠 구호인 씨가 지난 5월 22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구하라 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피는 물보다 진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오랜 시간 여러 사람이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교훈을 담은 격언. 다수가 보편적으로 동의할 내용을 담고 있지만, 세월을 거듭할수록 점점 그 의미가 옅어지는 모습이다. 부부싸움이란 칼이 기어이 물을 베어 이혼을 낳고, 그 과정에서 물보다 진하다는 피를 저버리고 천륜을 끊는 부모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되듯, 부부가 헤어지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지만 혈연을 끊어 내기란 실로 어려운 일인데, 그럼에도 ‘기르는 정’(양육)을 포기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가끔 ‘낳은 정’을 내세워 부모의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자식이 돈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해 1월 여성 소방관 A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7년 가까이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마주한 여러 ‘죽음의 현장’이 고통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에서 그의 죽음은 순직으로 처리됐고, 순직·일반유족 급여와 퇴직금을 포함해 유가족에게 1억6,000만원가량이 지급됐다. 문제는 그 유가족에 32년 전 이혼하고 집을 나간 후 소식이 끊긴 친모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32년간 왕래가 없었고, 딸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았지만, 친모란 이유로 유족 급여의 절반가량(7,700만원)이 친모에게 돌아갔다. 법적으로 친모에게 지급된 유족 급여를 돌려받을 방법은 없는 상황. A씨의 친부와 언니는 친모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7,700만원을 돌려받게 됐지만, 매달 지급되는 연금 절반(91만원)이 친모에게 지급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연금을 관리하는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양육 여부는 (연금 수령) 심사 대상이 아니다. (친모가) 민법에 따른 상속인이기 때문에 (지급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자녀를 돌보지 않아 ‘낳은 정’만 있는 경우 ‘기른 정’이 있는 가족에게 유족 급여를 양보하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사망한 고(故) 신선준 상사 앞으로 군인 사망보상금·군인 보험금 3억원이 지급됐을 때도 27년 만에 친모가 나타나 1억5,000만원의 유족 급여를 수령한 바 있다. 당시 신 상사의 아버지가 소송을 제기했으나 끝내 지급을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친모는 “내가 낳지 않았으면 기를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낳아준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찾는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교롭게 천안함 사건으로 함께 사망한 고(故) 정범구 병장의 아버지 역시 이혼 후 발길을 끊은 지 20여년 만에 나타나 유족 급여 절반을 수령해 논란을 더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부모로서의 권리는 주장하지만, 양육 의무엔 소홀했다는 점이다. 자녀가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사랑받는 데 몰인정했지만, 낳은 부모이기에 유족 급여를 받을 자격이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이 공통된 주장이다. 실제로 상속인 결격사유를 규정한 민법 제1004조에 ‘부양의무’는 빠져있어 양육에 소홀했다고 해서 상속에서 배제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상속을 목적으로 피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조작하는 등의 범죄행위를 제외하곤 사실상 상속에 제한이 없다.

그렇다면 법률이 개정될 여지는 없을까? 개정 여론이 높고 개정 시도도 있었지만, 실제로 개정에 이르진 못했다. 지난해 발의됐다 폐기된 일명 ‘구하라법’이 대표적인 사례. 해당법은 지난해 11월 배우 구하라가 사망하자 구씨가 아홉 살 때 집을 나간 친모가 20여년만에 나타나 유산 절반을 요구한 상황에서 비롯됐다. 당시 구씨의 오빠 B씨는 ‘친모와 20년간 교류가 없었고, 14년 전 친권까지 포기한 엄마가 동생 재산을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는 내용의 국회 입법청원을 제기해 처리 기준인 10만명이 넘는 인원의 동의를 얻었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상속법 개정안까지 발의됐으나 당시 국회가 ‘계속 심사’ 처분을 내리면서 20대 국회 마감과 함께 자동 폐기됐다. 양육 소홀의 기준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 정도를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만 유사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해 개정 여론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3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부양의무를 게을리할 경우 재산 상속을 금지하는 민법개정안(구하라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다시 한번 변화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백승종 철학박사는 책 『상속의 역사』(사우)에서 “상속의 역사는 한낱 사회제도의 역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사회의 숱한 애환이 담겨 있고, 생존을 지키려는 다양한 전략과 욕망이 꿈틀거린다. 상속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사회적 생물”이라고 말했다. 앞서 세월호 사고로 자녀를 잃은 한 유가족은 “보상금이 우리 아이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했는데, 혹 자녀 살아생전에 얼굴을 비치지 않다가 죽은 후에야 나타나 유족 급여를 타간 부모들도 이와 같은 마음일까? 비록 왕래가 없었지만, 그래도 목숨이 붙어있던 그때로 돌아가길 희망할까? 숱한 애환이 담긴 상속 역사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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