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 여름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의 빨간 머리 앤』
[리뷰] 그 여름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의 빨간 머리 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1.01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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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궁금한 게 많았던 어린 시절, 계속 되는 저의 철없는 질문에 난감해하던 부모님의 얼굴이 문득 떠오릅니다. 지금은 더 이상 아는 게 귀찮은 나이가 되었는데, 그 땐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았을까요. 그리고 지금, 내가 그 시절 궁금해 했던 것들을 다 알게 되었느냐고 누가 질문한다면, 저는 선뜻 “네”라고 대답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때 알고자 했던 대답의 절반이 ‘슬픔’이라는 것을 이제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죠.

『나의 빨간 머리 앤』은 이런 규정하기 어려운 사유를 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소설임과 동시에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기쁨과 슬픔이 적절한 무게로 교차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꿈을 가진 소녀의 성장 소설’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네요.

동화 같아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어른들의 정서를 묘하게 관통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장소설처럼 줄거리가 훤히 들여다보이거나 내용 자체가 크게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인 ‘리나’와 ‘리나 엄마’의 갈등, 특히 ‘고아’의 신분으로 등장하는 ‘카산드라’와 리나가 겪는 우여곡절은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먼저 자신의 엄마와 끊임없이 대립하던 리나가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단초가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리나의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인데요. 아빠와의 결혼을 반대한 외할머니가 싫지 않았냐는 질문을 리나는 “그래도 외할머니를 좋아하셨나요?”라고 재차 물으며 엄마의 심중을 파악하려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외할머니가 엄마로서 좋을 수 있냐는 질문인 거죠. 그 질문에 리나의 엄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외할머니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을 뿐이지, 괴팍한 분은 아니셨어. 그냥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하셨지. 할머니께선 아빠를 좋아하지 않으셨고, 솔직하게 그렇다고 말씀하셨어.”

리나의 이 질문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먼 훗날, 리나의 딸이 리나에게 작가가 되겠다는 엄마(리나)를 끊임없이 만류했던 외할머니(리나의 엄마)를 그래도 좋아했냐는 물음이 되기도 합니다.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올 이 질문에 과연 리나는 딸에게 어떻게 대답할까요?(물론 소설의 마지막에 리나의 엄마는 리나가 작가가 되는 걸 허락합니다.)

자신의 꿈을 끊임없이 만류하는 엄마 때문에 고아가 되고 싶어 하는 리나는 실제 고아인 친구 카산드라를 부러워합니다. 이런 식의 전개는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소설인 『빨간머리 앤』의 ‘고아’라는 도구를 살짝 비틀어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리나의 친구인 카산드라는 실제 『빨간머리 앤』의 주인공인 ‘앤 셜리’라고 볼 수도 있겠죠.

즉, 리나는 자신이 동경하던 ‘고아’라는 가상의 이미지(앤 셜리)를 현실적 실체(카산드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빠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실제 ‘반고아’가 되어버린 리나는 고아가 되고 싶었다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결정적으로는 리나의 아빠가 리나에게 미쳐 직접 건네지 못한 소설 『빨간머리 앤』을 발견한 후가 1차적 깨달음이 될 테고, 리나의 엄마가 결국 작문반 가입을 허락한 후가 2차적 깨달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소설의 종반부에 리나가 카산드라에게 쏟아 내는 일종의 잠언 같은 고백은 이 소설이 결국 무엇을 이야기 하는 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너는 내 친구야. 진심이야. 네가 고아여서, 아니, 네가 고아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야. 네가…… 네가…… 너이기 때문이야. 너는 나를 설레게 해. 나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해. 정말 진지하게 말이야.”

꿈, 친구, 엄마, 아빠, 선생님과 같은 단어를 주로 구사하는 소설은 자칫하면 어른들이 읽기에 지루하고 답답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어린이를 위한 소설처럼 보이지만 읽어보면 철저히 어른들을 위한 소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가 구사하는 논법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내가 그 시절 사랑했던 꿈, 내가 그 시절 만났던 친구가 그리우시다면 이 소설을 한 번 읽어보는 게 어떨까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내가 그 시절 무심코 놓쳤던 ‘무엇’이 아마 많이 생각나실 겁니다.

『나의 빨간 머리 앤』
샤론 제닝스 지음│소년한길 펴냄│216면│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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