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가족과 나누고 싶은 겨울 시(詩) BEST5
연인·가족과 나누고 싶은 겨울 시(詩) BEST5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2.20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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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시(詩) 읽기에 특별히 좋은 계절은 없다. 좋은 시는 언제 읽어도 좋다. 다만 시와 마침맞게 어울리는 계절은 있다. 겨울과 닮아서 혹은 그렇지 않아서. 겨울의 시린 풍광 속에서 기어이 삶의 온기를 찾으려는 시들이 있다. 글자와 글자가 부딪혀서 작은 불빛을 일으키는 시들. 그 불빛이 세상의 위로가 되는 시들. 그런 불빛과 위로가 묻어있는, 겨울과 어울리는 시를 찾아봤다.

최영미 「옛날의 불꽃」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 따뜻했었다 / 고맙다 /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지난한 삶도 긴 우주의 시간에 비춰보면 찰나이고 편린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감 또한 그렇다. 그것은 시인의 말처럼 “잠시 훔쳐온 불꽃”이다. 곧 사라지고, 세월이 지나면 그 기억조차 잊히겠지만, 고맙다. 그저 고마운 일이다.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사랑과 순정을 지키려는 시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시다. 아프게 아름답다. 특히 이 시는 하강의 이미지와 상승의 이미지가 묘하게 맞물린다. “눈은 푹푹 날리고”라는 문장은 이중적인데, 눈발이 바람을 타고 잠시나마 올라가는 순간이 산골로 가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과 일치하는 지점일 것이다.

윤동주 「눈」

지난밤에 / 눈이 소오복히 왔네 // 지붕이랑 / 길이랑 밭이랑 // 추워한다고 /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 그러기에 /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윤동주의 시에는 ‘부끄러움’이나 ‘회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감정과 정서를 묘사하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겨울의 계절감 또한 감각적으로 채색한다. 결국 시는 마음이 하는 일. 눈이 길과 밭을 덮어준 이불로 본 그의 문장에서 윤동주의 청아한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김문주 「겨울 내소사」

세상에 수런거리는 것들은 / 이곳에 와서 소리를 낮추는구나, 변산 / 변방으로 밀려가다 잠적하는 지도들이 / 일몰의 광경 앞에 정처 없는 때 / 눈 내린 오전의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풍경이 되고 어느새 / 동행이 되는 길의 지혜 / 작은 꺾임들로 인해 그윽해지고 틀어 앉아 / 더 깊어진 일은 /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도 길이 된다 / 나무들은 때때로 가지 들어 눈 뭉치를 털어 놓는다 (중략) 대웅보전 앞마당에 발자국들 질척거리고 /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이여 / 내소사 환한 고요 속에 오래도록 읽는다 / 서해 바람의 이 메마른 문장을

김문주 시인의 「겨울 내소사」는 사찰의 고요를 알고, 그 고요가 숨 쉬는 숲길의 정취를 알며, 무엇보다 시작(詩作)의 기쁨과 두려움을 안다. 불교적 사유를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이 시에는 겨울 사찰의 소박하지만 장엄한 정경이 있다.

박용래 「눈」

하늘과 언덕과 나무를 지우랴 / 눈이 뿌린다 / 푸른 젊음과 고요한 흥분이 서린 하루하루 낡아 가는 것 위에 / 눈이 뿌린다 / 스쳐 가는 한 점 바람도 없이 / 송이눈 찬란히 퍼붓는 날은 / 정말 하늘과 언덕과 나무의 / 한계는 없다 / 다만 가난한 마음도 없이 이루어지는 / 하얀 단층

박용래의 시에는 생략과 여백이 있다. 눈으로 세상을 지우고 싶다는 시인의 간절한 바람은 “푸른 젊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눈이 뿌린다”를 반복함으로써 삶과 존재에 대한 회의를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눈’으로 형상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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