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영원한 백석의 연인’ 김자야의 산문집 『내 사랑 백석』
[책 속 명문장] ‘영원한 백석의 연인’ 김자야의 산문집 『내 사랑 백석』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0.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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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인생은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실제로 겪어보니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유달리 평탄치도 못했던 인생, 나그네 길 역려(逆旅)를 어디로 어떻게 헤메이다가 아무런 얻은 것 하나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니 백발만 성성! 내 인생 그 아까운 청춘은 마치 강가에서 새를 잡았다가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그 아수하고 허전한 마음을 어디다 부쳐보리오. 

노년의 시간이 정말 한가롭고 무료하고 심심해서, 그 옛날 정다웠던 시인 백석 선생의 시전집이나 뒤져보는 것이 그동안 저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분의 시작품 가운데는 꽃답고 영롱한 두 청춘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살아 있고, 청순한 순정과 격렬한 열정의 너그러운 미소가 변함없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잠시 나이조차 잊고서 그 시절 청춘으로 되돌아갑니다. 정들었던 사람과 이마를 맞대고 곧장 사랑의 이야기에 꽃을 피우니 그 원통하고 가슴 아프던 이별조차도 잊었습니다. 당신이 계신 별의 나라, 이별을 모르는 나라에서 우리 두 사람은 불로주에 취한 듯 그 꿈을 깨지 말 것을 서로 기원했습니다. 

건망증이 심한 저는 아름다운 추억을 행여 놓칠세라 주섬주섬 챙기어 되는대로 써놓고 보니 그런대로 소중한 기록이 될듯한 생각도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루한 원고뭉치를 두서없이 엮어서 시인 이동순 교수께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 교수는 이미 지난 1987년 가을에 『백석시전집』을 편찬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저의 글을 받아 읽고서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생생하게 쓰면 매우 좋은 글이 될 듯하니 더 써보라고 용기를 주며 권유했습니다. 

저는 이 권유를 받고 한편으론 몹시 기쁘고 즐거웠으나, 또 한편으론 걱정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분수를 모르는 호기심은 자꾸만 속에서 일어나 ‘그래, 한번 써보리라’ 하는 마음이 내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틈틈이 쓴 글을 그때마다 이 교수께 보내었더니, 그분은 나의 어법과 어휘가 모두 구식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남루한 문장을 가다듬고 매만져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이렇게 시작한 작업이 마무리되고,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까지 엮어지게 됐다 하니, 저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감격을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중략)

그런 심정으로 추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글로 풀어내다 보니 지난날의 아기자기했던 추억들이 마치 옹달샘에 맑은 물이 고이듯 졸졸 고이고 봄풀이 돋아나듯 소록소록 돋아나서, 저는 어느 틈에 우리들 청춘의 생생한 필름을 혼자서 돌려보는 기막힌 환상에 빠지곤 했습니다. 한마디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내 사랑 백석』
김자야 지음│문학동네 펴냄│316쪽│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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