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독립운동, 그 생생한 현장으로… “사건과 인물로 본 임시정부 100년”
[포토인북] 독립운동, 그 생생한 현장으로… “사건과 인물로 본 임시정부 100년”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5.21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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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책은 헤이그 특사였던 이상설과 이준, 의병장 유인석과 이범윤, 안창호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의지로 1919년 3월 17일 연해주에서 수립된 임시정부 ‘대한국민회의’와 그해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모인 애국지사들이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 4월 23일 전국 13도 대표들이 모여 수립한 한성임시정부 등의 유적지를 따라가며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발로 뛰어 얻어낸 객관적인 역사와 생동감 있는 글이 치열했던 독립운동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안중근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김월배 건국대 경제학 박사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소설을 통해 알려온 문영숙 작가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내놓은 결과물이다.

[사진= 서울셀렉션]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노비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독립운동에 있어서 국가가 그에게 부여한 출신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연해주에서 제정러시아의 동방정책을 통해 군납업을 해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자신의 모든 재산과 생명을 항일 독립운동에 쏟았다. 러시아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이자 러시아 한인들의 부모 역할을 했으며,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16쪽>

[사진= 서울셀렉션]

안중근 단지혈서 엽서. 태극기에 쓴 大韓獨立 네 글자는 안중근 의사가 왼손 무명지 한 마디를 잘라 피로 쓴 글씨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피로써 맹세한 목표대로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명치헌법을 만들고 청일 전쟁 당시 총리와 조선통감부 통감을 역임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21쪽>

[사진= 서울셀렉션]

이상설(우측). 이준, 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됐으며, 국권 회복과 독립을 위해 활약했다. 이상설은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에 항거하며 자결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1907년에는 일제의 외교권 침탈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가지만, 서양 강대국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제의 침략을 묵인한다. 이후 광복군을 양성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으나 1917년 지병으로 사망한다. 이상설은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무슨 낯으로 조국에 가겠느냐. 유품과 시신을 화장해서 동해로 흘러드는 쑤이펀허 강물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31쪽>

[사진= 서울셀렉션]

국호 ‘대한민국’을 발의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신석우. 그가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정하자고 하니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계속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때 신석우는 나라를 빼앗겼을 뿐이니, 우리가 국호를 다시 찾아야 나라를 찾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대한’을 유지하자는 의견을 냈다. 이 의견이 힘을 얻었고, 여기에 ‘제국’ 대신 ‘민국’을 붙이자는 의견도 신석우가 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의 탄생이었다. <71쪽>

『사건과 인물로 본 임시정부 100년』
문영숙·김월배 지음│서울셀렉션 펴냄│288쪽│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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