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회 · 문화적 현상들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본 칼럼은 ‘책으로 세상을 비평하는’ 독서신문이 형사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책에서 얻기 힘들었던 법률, 판례, 사례 등의 법률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사회 · 문화적 소양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
최근 경기도와 인천광역시에서 남성 의사가 불법 촬영을 시도하다가 적발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의료계 내에서의 성범죄가 이슈가 되고 있다. 경찰청의 ‘성범죄 의사 검거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성범죄를 범한 의사는 2008년 44명에서 2017년 137명으로 3배 가량 늘었다.
의료인의 성범죄 사건에서 그 피해자는 환자, 간호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환자를 상대로는 진료를 빙자한 성범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최근에는 심리치료를 빙자하여 성폭력 트라우마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사건도 있었고, 진료 과정에서 환자를 부적절하게 추행하거나 몰카를 촬영하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많다.
작년 여름 강원대병원에서는 의사들이 간호사들에게 ‘갑질’을 하면서 추행을 하였다는 내용의 ‘미투 운동’ 이 벌어졌는데, 회식 자리에 불러 옆에 앉히고 추행을 하거나, 수술 도중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뽀뽀하려고 하는 등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다수 발생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의료연대본부 강원대병원분회측은 성범죄와 갑질에 대한 진상조사 착수를 촉구하였다.
공무원 등의 경우에는 성범죄를 저질러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당연히 퇴직될 뿐만 아니라, 징계처분도 받게 된다. 그러나 의료인의 경우에는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그 자격에 관한 별다른 제재수단이 없다. 의료법상 의사 면허의 취소나 자격정지 사유에는 성범죄 전과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의료인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유죄판결을 받는다고 하여도 계속해서 의사 면허가 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선고받는 경우 취업제한명령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의료법상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및 간호사는 취업제한명령이 내려지는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의료법상의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취업 또는 사실상 노무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취업제한 처분은 법원의 재량으로 따로 선고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기간도 최장 10년까지 한정되므로, 환자나 간호사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다시 다른 환자들이나 간호사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최근 국회에서 장정숙 의원이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의료인이 성범죄를 범해 공소가 제기된 경우에는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그 면허자격을 일시적으로 정지하도록 하고, 재판 결과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경우에는 그 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였다.
위와 같은 의료법 개정안은 단순히 공소가 제기된 것만으로도 면허자격을 정지하도록 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검찰에서 공소제기를 한 것은 이미 범죄사실을 객관적으로 소명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면허자격을 정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논거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의료인의 경우는 특히 업무의 특성상 환자의 신체에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직업 윤리가 요구되며, 그 도덕적인 기준도 다른 직업에 비해 엄격히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만으로도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으므로 의료인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박재현 더앤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경찰대학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수료
-前 삼성그룹 변호사
-前 송파경찰서 법률상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