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우리는 4년에 한 번 잠깐씩 열병을 앓는다. 월드컵 병이다.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한밤중에도 아파트 창은 모두 환하다. 감탄사와 탄식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국민적 하모니를 연출한다. 더러는 선수를 꾸짖거나 감독을 비난하는 과감한 언사도 퍼붓는다. 여기에 맥주 한잔. 여름밤 90분간 펼쳐지는 풍경이다.
축구는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FIFA 회원국이 유엔 가입국 숫자보다 많다. 그래도 축구에 관한 한 발상지인 유럽이 초강세다. 세계 경제를 이른바 G2라고 하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축구는 여전히 유럽세가 월등하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인 유럽의 한 관계자는 미국 관계자가 미국엔 왜 노벨문학상을 주지 않느냐고 묻자 “우리(유럽)가 당신네보다 잘하는 게 문학과 축구밖에 더 있느냐”고 했다 한다. 이쯤 되면 축구는 전쟁이다. 자존심 걸린 ‘대리전쟁’이다. 골 하나에 국민이 웃고 골 하나에 나라가 운다.
우리는 얼마 전 이런 대리전쟁을 치렀다. 2018년 6월 27일에서 28일로 넘어가는 야심한 시각, 우레와 같은 첫 골이 터졌고 천둥과 같은 추가 골이 폭죽처럼 울렸다. 세계 1위 독일을 2대0으로 물리친 것. 외국 매체는 월드컵 역사상 대이변 2위로 선정했다. 우리는 앞선 두 경기에 실망했기에 독일과의 일전은 한 골이라도 넣을 수 있나가 차라리 관심사였다. 손흥민이 넣을까 아니면 누가 득점할까 하는 정도가 관심이라면 관심이었다.
독일전에 나선 11인 용사들은 어제 그제와 딴판이었다. 악착같은 근성으로 볼을 따라다녔고 투지는 넘쳐 그라운드를 땀으로 적셨다. 앞선 두 경기를 속죄(?)라도 하듯 선수들은 달리고 달려 발목이 시큰거렸고 장딴지는 옥죄어 왔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턱까지 차오르는 날숨 들숨은 독일 선수들에겐 무언의 압박이 됐고 공을 쫓는 눈초리는 호랑이 눈처럼 형형했다. 그 에너지가 종료 직전 한꺼번에 터졌다. 드디어 터졌다. 11인의 엔진 코리아호(號)가 자동차 종주국 독일을 앞서며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달렸다.
이튿날 일본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독일전 승부는 멋진 일이었을지언정 아름답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폴란드에 지고 있으면서도 볼을 돌리며 결국 16강에 올랐다. 세네갈과 동률을 이루었지만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앞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세계 여러 언론과 팬들이 일본의 ‘전술’을 비난했다. 결코 페어플레이가 아님을 지적하며 ‘그렇게’ 16강 올라가서 어떻게 되나 보자라는 식으로 비아냥대기도 했다.
일본은 완벽주의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단계를 밟지 않고서는 불안해하는 민족이다. 또 목적 달성을 위해 몸을 낮출 줄도 안다. 절대로 큰소리치지 않으며 실속을 찾는다. 이런 것을 무서움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강(强)에 맞서는 강(强)을 찾을 수 없다. 당연히 폭발력이 없다. 통쾌함이 없다. 결코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우리 11인 용사가 자랑스럽고 우리 한국인이 어깨를 확 펴는 쾌감이 있었기에 양국을 축구로 비교하는 게 천박한 국수주의라는 비판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의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기쁘다. 독일에 2대0 승, 모처럼 시원했다. 맥주 캔은 어느덧 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