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시상식, ‘감흥’ 없다
문화계 시상식, ‘감흥’ 없다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1.0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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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소감’에 ‘나눠주기 식’ 시상까지...
왼쪽부터 <사진출처=SBS 방송 캡처> <사진출처=KBS>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기·연예대상’은 소감 매뉴얼이 따로 있는 것일까.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하느님에 대한 감사를 시작으로 소속사, 제작진, 스타일리스트, 동료, 그리고 가족한테 감사한다는 말만 늘어놓다가 무대에서 내려온다. 이름만 열거했을 뿐인데 시간이 모자란다. 수상자 호명, 수상, 감사한 사람 이름 나열... 또다시 수상자 호명이 끝없이 반복된다. 어떠한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연말 시상식.

지난해도 예외는 없었다. 방송 3사 ‘연기·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배우들의 수상 소감이 대부분 고마운 이들을 나열하는 ‘감사하기 대회’에 그쳐 아쉬움을 남긴다. 시상 분야와 수상자가 많아 소감을 말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그 이유며, 이는 곧 상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다시 오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지난해 방송 3사 연기대상 수상자 108명 가운데 이색적인 수상소감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를 제외하면 전부 비슷비슷한 소감을 나열할 뿐, 예술인 특유의 영감은 없다. 언제까지 고리타분하고 긴 수상 소감을 들어야 할까. 최근 대종상 수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배우 최희서의 수상소감이 논란이 된 바 있으며 예능 프로그램 <인생술집>에 출연한 그녀는 이렇게 해명했다. MC 신동엽이 “소감이 진짜 좀 길었던 건 아느냐”고 묻자 “그렇다. 좀 길었다. 사실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무대에 다시 오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상소감을 종이에 적어 준비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쿨하게 인정한 바 있다.

배우들은 그럴 수 있다. 다시 오르지 못할 수도 있는 자리에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문제는 상 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상을 받는 사람이 많으니 소감 발언 시간은 줄어들고, 시간이 없으니 ‘고마운 사람’과 ‘소신 소감’ 중에서 많은 이들이 이름 열거를 택하는 것이다.

방송사 ‘연말 성의 표시나 섭외 용도로...’

실제로 올해 <MBC 연기대상> 수상자만 40명이다. <KBS 연기대상>은 46명. <SBS 연기대상>이 22명 정도로 그나마 상식적인 범위다. 각 사 <연예대상> 수상자도 30명 남짓이다. 1993년 수상자 수를 보면 SBS에서 9명, MBC에서 12명, 그리고 KBS에서 13명이었던 수상자가 3~4배 늘었다. 대상-최우수상-우수상-인기상-신인상’ 정도로 분류됐던 시상 분야는 2008년부터 '미니-일일극-주간극'으로 나뉘는 등 세분화되고 있다. 올해 <MBC 연기대상>은 ‘악역상’ ‘투혼 연기상’ ‘코믹 캐릭터상’까지 신설했다. 공동수상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MBC 연기대상> ‘월화극 부문 최우수 연기상’은 후보가 3명인데 2명이 수상했다.

연말 시상식은 한 해 동안 방송됐던 각종 프로그램을 되새겨보고 그 의미를 평가하는 자리다. 물론 출연진을 격려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시상식은 자사 드라마를 홍보하고 출연진들에게 상을 하나씩 나눠줌으로써 보답을 하는 행사가 돼버렸다. 일부 방송 관계자는 “배우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방송사가 트로피를 연말 성의 표시나 섭외 용도로 활용하면서 벌어진 촌극”이라고 말한다. 어렵게 공들여 출연해준 배우한테 고마움의 표시를 해야 하고, 또 미래의 관계 맺기를 위해서도 상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영시 암송’, ‘성범죄 일침’ 등 인상적인 수상소감

한편 뻔하고 진부한 수상소감 가운데 이목을 끄는 이색적인 소감도 있었다.

배우 송옥숙이 시상식에서 2017년 우리 곁을 떠난 배우들을 추억했다. 그는 "올해 우리 곁을 떠난 배우들이 많다. 故 김지영, 김영애, 윤소정, 김주혁을 그리워하는 마음 담아서 평소에 암송하는 좋아하는 시로 인사말을 대신하겠다"며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시를 암송했다. 송옥순은 ‘행복을 주는 사람’은 2017년 <MBC 연기대상>에서 황금연기상을 수상했다.

배우 양세종은 수상자로 호명 되자 "감사하다. 사랑의 온도를 3~4개월 동안 함께한 모든 분들에 감사드린다. 솔직한 사람되겠다"고 간결한 소감을 밝혔다. 이 짧은 수상소감을 말하며 격하게 떨고 있는 그의 모습은 '직진남' 온정선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드라마 '사랑의 온도'에서 볼 수 없었던 순수하고 긴장감 가득한 신인 배우의 모습이었다. 양세종은 ‘사랑의 온도’로 2017년 <SBS 연기대상>에서 신인연기상 남자 부문을 수상했다.

배우 정려원은 수상한 뒤 "저희 '마녀의 법정'이라는 드라마가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성범죄가) 감기처럼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있지만, 가해자들이 드러내지 않는다. 이 드라마를 통해 성범죄에 대한 법이 강화돼서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정려원은 ‘마녀의 법정’으로 2017년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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