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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칼럼] 네가 나를 꽃으로 대해주고 내가 너를 별로 바라봐 준다면…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얼마 전 방송국에서 잘나가는 선배를 만났다. 선배께서 ‘운영하고 있는 인사동 가게는 잘 되냐’고 묻기에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러자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진즉 얘기 하지 않았나요? 가게는 왜 문을 닫았어요? 손해는 보지 않았습니까? 앞으로는 뭘 할 생각이에요?”
 
“손해가 커서 뒷수습도 해야 하고 딱히 뭘 할지 정해진 것도 없어 마음이 편치 않으니 도와주셨던 분들께 감사의 말씀도 아직 못 드렸습니다. 요즘 일부 특화된 식당을 빼고는 대부분이 적자일 것입니다. 자영업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아직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국장님이 참 부럽습니다. 이 나이에 아직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자 그 선배께서 말씀하셨다. “황작가, 우리 애가 장애인인 것 몰랐지요. 저는 애만 정상이 될 수 있다면 재산이고 뭐고 다 버리고 노숙자가 되어도 좋습니다. 황작가 아들 영리해 보입디다. 그런 아들이 있다면 100억원을 빚져도 걱정이 없겠소. 내가 직장 좋고 늘 웃고 농담을 잘하니 걱정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누구보다도 힘들고 아프게 살아왔습니다. 죽고 싶을 때가 있어도 애가 걱정이 되어 죽을 수도 없습니다. 누구도 나의 심정은 모를 겁니다. 나는 오히려 황작가가 부럽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평가하고 재단한다. 그러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련이 없는 사람은 없다.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말 못할 사연들이 있다.

‘당신 아들 같은 자식이 있다면 100억원을 빚져도 걱정이 없겠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덕담이나 위로의 말쯤으로 여기고 그냥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장애아들을 위해 처절히 살아 온 선배의 사연을 알고 나자 그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살다보면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고 서운함이나 언짢은 일들도 많이 겪게 된다. 그럴 때는 나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말고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알아보아야 한다. 같은 말, 같은 행동도 그 사람의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와 닿을 수 있다.

마음이 편치가 않아 이런저런 모임들에 좀 뜸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건방지다, 변했다’는 투로 이상한 사람을 만드는 회원들도 있고 전화나 소주한잔 하자며 만나 ‘무슨 일이 있느냐?’며 걱정해 주시는 회원들도 있다.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는 그 사람만의 말 못할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대화와 기다려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지역, 이념, 세대 간의 모든 갈등도 ‘나만 옳다’는 식이 아니라 서로의 속사정을 알아보려는 대화가 있어야 한다. 

서양에는 핑거볼(finger bowl)이 있다. 서양요리의 정찬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과일을 먹고 난 뒤에 손가락 끝을 씻기 위한 물을 담은 작은 사발이다. 서양인이 주관한 파티에 동양인이 초대를 받았다. 핑거볼이 나오자 동양인은 그것이 먹는 물인 줄 알고 마셔 버렸다. 주위에 있던 서양인들은 에티켓을 모르는 무식쟁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실실 웃기도 했다.

그러자 파티를 주관했던 분이 자신도 얼른 핑거볼의 물을 마셔버렸다. 동양인이 핑거볼의 물을 마신 것은 무식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것을 비웃은 일부 서양인들이 오히려 무식하고 잘못된 것이다.

배려보다 위대한 에티켓은 없다. 사람들은 늘 몰라서 또는 힘들고 마음이 편치 않아서 평소와 달리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일일이 가르치고 훈계하려는 것보다 그냥 곁에 있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더 큰 위안이 된다. 상대의 입장을 살펴주고 배려해 주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은 없다.  

겨울은 나만의 겨울인듯 하지만 기실 돌아보면 모두가 떨고 있는 겨울이다. 밤은 나만의 밤인듯 하지만 기실 살펴보면 모두가 울고 있는 밤이다. 북풍한설, 어두운 밤 신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기와 질투의 겨울이어서도 증오와 분노의 밤이어서도 아니 된다. 비록 춥고 어두울 때 만났지만 네가 나를 꽃으로 대해주고 내가 너를 별로 바라봐 준다면 세상은 봄볕 가득해 질 것이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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