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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명태, 겨울이면 더 따뜻해지는 이름목성균 수필집 「돼지 불알」의 감상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먼 산에 단풍이 가을을 시샘하는 듯 하더니 벌써 칼바람이 불어올 기세다. 머잖아 다가올 이 겨울, 동장군과 싸울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움츠러든다. 살갗을 스치는 싸늘한 바람 탓인가 보다. 뜨끈한 명태국물을 어머니와 단 둘이 앉아서 얼굴 맞대고 훌훌 마시고 싶다.
 
이런 생각에 잠기노라니 어린 날 어느 해 겨울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심한 고뿔로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괴로워하는 딸아이를 간호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어머니였다. 동이 트자마자 어머닌 나를 등에 업고 시오리 길을 걸어 읍내 장터 의원을 찾았다. 그런 어머니가 병원 문을 나서며 어물전에 들려 명태를 몇 마리 사서 들고 나를 업은 채 시오리 시골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등에 업힌 내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어느 순간 당신은 등에 업혀 잠이 든 나를 길옆 너럭바위에 눕혀놓고, 오던 길을 되돌아 쫓기듯 내달았다. 새끼줄에 꿰여있던 명태 중 한 마리가 그만 머리 쪽만 꿰인 채 몸통이 달아났기 때문이다.
 
명태를 볼 때마다 그때 어머니 모습을 지금도 머릿속에 그려보며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한 사랑에 감복한다. 새끼줄을 이탈한 명태는 분명 흙투성이가 되었을 터이고, 아픈 자식을 찬 바위 위에 눕혀놨으니 나의 몸이 얼까봐 노심초사 하였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조여든다.
 
요즘 걸핏하면 냉장고에 간수해 둔 반찬도 시간 지났다며 버리곤 한다. 나는 그럴 때면 땅에 흘린 명태 한 마리 되찾고자 먼 길을 숨차게 달렸을 지난날 어머니 생각에 죄스런 마음을 갖는다.
 
동태, 황태, 코다리, 북어 등등 명태 이름은 10가지가 넘는다. 그 중에도 명태는 함경북도 명천군에 사는 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잡았다고 해서 명태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명태는 그 이름 못지않게 다양한 요리로 우리 식단에 올라 겨울 건강을 지켜준다.
 
명태를 바닷가 덕장에 말렸다고 북어이다. 해풍에 바짝 말려진 북어는 우리 조상님 제사상에 오를 만큼 고급 어물이다. 또한 액운을 물리치는 장소에서는 수호신처럼 액땜막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명태의 머리를 사람들은 대가리라 부른다. 명태가 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기분 나쁘겠지만 이놈을 푹 고운 구수한 국물은 일미이다. 영양탕을 끓일 때도 명태가 필요하다. 개고기의 잡냄새를 없애준다. 해산물과 야채를 듬뿍 넣은 동태찜은 어떤가? 잘 사는 사람에게도 못 사는 사람에게도 겨울철 명태국은 일등 건강식품이다. 뿐만 아니다. 술안주로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요즘은 전과 달리 국산 명태를 구하기가 어렵단다. 남획에 기후 탓이라니 명태라는 이름도 옛 말이 될지 모르겠다. 밥상 위에 오르는 명태가 주로 러시아산이라고 한다. 명천군에 사는 태씨 조상이 마음 아프겠다.
 
이런 명태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있다. 고인이 된 목성균의 수필집『돼지 불알』에「명태에 관한 추억」이라는 수필이 있다.
 
그는 명탯국을 안 먹는 친구를 경멸한다고 했다. 생선이거늘 비린 맛을 지니지 아니하니, 그 국이 맛없다는 친구가 못마땅하다고 하였다. 한편 목성균은 자신도 북어포는 솜을 씹는 맛 같아 맛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고추장을 찍어먹으면 숨어있던 북어살의 구수한 맛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또한 그는 명태가 맛이 없는 것은 우리 입맛에 순응하기 위한 담백성 때문이란다. 그 담백성을 몰개성적이라고 비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비린 맛이 강한 생선은 교만하다고까지 했다. 비린 생선은 우리가 의도하는 생선 맛을 내주지 않는단다. 그리고 명태는 자기 맛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칭찬한다. 그런 명태를 모두들 줏대 없다고 하지만 줏대 없다는 게 명태의 줏대라고 명태의 생태를 자랑한다. 목성균은 이렇듯 명태를 좋아했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의 색깔을 고집 못할 때가 많다. 물이 흐르듯 때론 바람에 출렁이는 갈대처럼 살아야 되나보다. 어쩌면 명태는 이런 인간 처세에 본보기라도 보이려는 듯 마냥 맛이 담백한지도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우리네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또한 어수선한 나라 일들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허탈감마저 드는 이즈막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라 경제마저 어려워져 날이 갈수록 서민들 주름살은 깊어만 가고 있다. 올 겨울 어려운 이웃에선 명태 몇 마리 마음 놓고 사먹을 수 있을 런지 걱정이다. 이런 염려 때문인지 왠지 돌아오는 겨울이 지레 춥게만 느껴진다. 얼큰하고 뜨끈한 명태 찌개 앞에 놓고, 세상사 모두 잊은 채 어려운 이웃들과 소박한 한 끼 밥 나누고 싶다. 그런 겨울을 지내고 싶다.

엄정권 기자  tasto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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