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35)] 독일 중·고교 국어 수업엔 아예 교과서가 없다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35)] 독일 중·고교 국어 수업엔 아예 교과서가 없다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10.25 10:5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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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창간 47주년 특별기획> 독일 비스바덴 딜타이김나지움(중고교) 8학년 독일어 수업 현장참관기

<독서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딜타이김나지움 201호 학생들을 담당하는 교사 크라우디아 으데코벤 씨

[비스바덴(독일)=신향식 특파원] “구텐 모르겐, 으데코벤?”

2015년 5월 27일 오전(현지시간), 독일 헷센주의 주도 비스바덴시(市)에 있는 딜타이김나지움(인문계 중·고교) 201호 교실. 3교시 독일어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8학년 B반 학생 20여명은 자리에서 모두 일어섰다. 재잘대는 소리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갑자기 조용해졌다. 교사에게 다 함께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담당 교사는 크라우디아 으데코벤 씨로, 경험이 많아 보이는 50대 여교사였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옷차림이 수수해 보였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넣어주는 강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이끌었다.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답변을 유도하고, 학생들에게 생각을 하게 하고, 발표를 시키고, 글로 쓰게 했다. 수업 분위기가 어수선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제자들의 생각을 끄집어내 주려는 스승의 열정이 물씬 풍겼다.

기자는 재독 한국교육원(원장 문경애)의 주선으로, 딜타이김나지움의 독일어 수업 6개 교시를 연속으로 참관했다. 온천 도시로 유명한 비스바덴에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 주재원, 유학생 등 교민 870여명이 살고 있다. 기원전 40년경 로마의 군사 요새가 이곳에 세워진 뒤, 온천 도시가 됐으며 로마의 네로 황제도 이 도시를 찾았다고 한다. 딜타이김나지움은 비스바덴 지역 최고의 명문고교로, 재독 한국교육원의 노력으로 한국어 강좌도 개설돼 있다.

◆ “한국에선 공부 많이 시킨다”는 말에 신기한 표정 지어

“한국에서 신문기자가 우리 수업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으데코벤 교사가 맨 뒷자리에 앉은 기자를 소개했다. 파란 눈에 금발머리를 한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50여개의 눈동자가 기자를 향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는 모습이 귀여웠다.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텐 모르겐” 하면서 인사를 했다.

“한국 학생들은 어떻게 생활을 합니까? 우리 친구들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한국과 독일은 많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무척 엄격하게 학교생활을 관리합니다. 공부도 엄청나게 많이 시킵니다. 학교를 마친 뒤에 학원이란 곳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중략)”

으데코벤 교사는 기자를 수업에 잠시 참가시키는 것도 교육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기자가 지켜보는 수업은 학생들이 더 집중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기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생은 여러 차례 고개를 돌려 기자에게 눈을 맞췄다. 살짝 보조개가 파인 얼굴로 미소 지어 보이는 ‘보조개 왕자’도 있었다.

크라우디아 으데코벤 씨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답변을 유도하는 수업 방식을 활용한다.

◆ 주말 야유회 준비에 필요한 의견도 다양하게 수집

고학년 교실이라서 그런지 특별히 환경미화를 해 놓지는 않았다. 교사는 본격적인 수업을 하기 전에 약 5분간 주말 야유회에 관해서 의견을 모았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주말에 실시하는 야유회라고 했다.

“이번 야유회에 좋은 의견이 있나요? 어디에서 만나고, 어떤 프로그램으로…….”

교사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뒷줄에 앉은 여학생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저, 과자를 좀 많이 가져와도 될까요?”

교실에 웃음폭탄이 터졌다. 관심사는 온통 먹는 데 쏠렸다. 교사가 “분담해서 간식을 가져오면 더 낫지 않겠냐”고 했다. 학생들이 서로 가져오겠다고 나섰다.

“산딸기도 무척 맛있습니다. 초콜릿 크림도 가져가고 싶어요.”

“저는 크림을 얹어 먹을 크래커를 가져갈게요.”

“엄마가 맛있는 자두잼을 만들었어요. 가져갈 수 있어요.”

“저는 커피를 좀 끓여올까 합니다.”

“샌드위치는 제가 가져올게요.”

교사가 “우유를 가져올 사람 없을까? 잼은 누가 가져올래요? 빵을 가져올 사람은 없나요?” 하고 묻자 “저요, 저요!” 하면서 여기저기서 손이 번쩍번쩍 올라갔다. 야외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활동에 기대하는 눈치였다.

“페터는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죠? 치즈를 좀 준비해 올래요?”

“저는 치즈를 안 먹어요.”

치즈를 먹지 않는다는 말에 모두 까르르 웃는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야유회 준비물을 통보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최대한 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세심하게 살펴본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의사결정 방식에도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다.

◆ 15분간 교사의 설명 뒤에 ‘사기꾼’을 주제로 열띤 토론

본격적으로 독일어 수업이 시작됐다. 한국으로 치면 국어 시간이다. 하지만 별도로 교과서는 없었다. 독일에서는 교사 재량으로 문학작품이나 단행본을 선정해 독서와 토론, 글쓰기를 하면서 독일어 구사 능력을 키워준다. 몇 주나 몇 달간 책 한 권을 읽고 소감을 발표하고 글로 쓰면서 충분히 언어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수업 교재는 칼 추크마이어(Carl Zuckmayer) 작가가 쓴 『쾨페니크의 대위(Der Hauptmann von Köpenick)』라는 책이었다. 『쾨페니크의 대위』는 1930년에 발표된 장편소설로, 2차 세계대전 전에 어느 구둣방 직공의 에피소드를 그린 이야기다. 그는 한평생 굴욕을 받은 데 반항하는 상징으로 대위로 변장해 쾨페니크 시의 금고를 압류한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사기꾼’이었다. 우선, 15분 가량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에 등장한 인물들을 분석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교사는 “이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등 생각을 많이 하도록 유도했다. 독일어 수업이라기보다는 사고력 증진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우선,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인데 변장을 하고 나타납니다. 돈도 없으면서 부자처럼 하고 다닙니다. 의사도 아닌데 의사로 변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이고 상처를 줍니다. 그러면 그는 왜 사기꾼이 되었을까요?”

교사의 질문에 학생들이 앞 다퉈 발표를 했다.

“단순히 재미가 있어서 사기를 친 것 같습니다.”

“예전에 자신도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 복수심을 품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꿈을 이루지 못해 낙담한 나머지 남을 속인 게 아닐까요?”

“자신은 머리가 좋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리석을 것으로 착각하고 사기를 친 것으로 보입니다.”

“돈이 급해서 사람들을 속였을 수도 있습니다.”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쉽게 이익을 챙길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딜타이김나지움의 학생들은 교사의 질문에 번쩍번쩍 손을 들며 자기 생각을 말한다. 구두 점수도 시험 배점의 50%를 차지한다.

◆ 구두점수 50%… 교사는 답변하는 학생들 태도 관찰

교사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제시해 보라”고 하면서 계속 질문을 던졌다. 자유롭게 발표하게 하면서 학생들의 참여도를 면밀히 관찰했다. 얼마나 질문을 많이 하는지도 점검했다. 구두 점수는 시험 배점의 5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주간 이 책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오늘 이 책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칠판에 질문을 세 가지 적을 테니 여러분 공책에 답변 내용을 글로 적어 보기 바랍니다.”

교사는 질문 내용을 칠판에 적었다.

“첫째, 사기꾼은 피해자의 어떤 성격을 이용해 사기를 치려고 하나요?”

“둘째,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이런 사기꾼에게 넘어갈까요?”

“셋째, 사기꾼은 어떻게 행동해야 사람들을 잘 속일 수 있을까요?”

◆ 토론 뒤에 자기 생각을 공책에 글로 쓰도록 유도

학생들은 네댓 문장의 답변을 노트에 적었다. 충분히 생각한 뒤에 문장으로 적은 것이다. 그 뒤에 교사가 다시 물어봤다. “여러분! 뭐라고 적었나요? 답을 모아봅시다.”

“사람을 너무 빨리 믿거나 혹은 너무 호기심을 갖다 보니 사기를 당하는 것 같습니다.”

“눈치가 없고 순진한 사람들이 주요 표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사기라는 생각이 들어도 맞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 발표가 뜸해지자 “다른 의견은 없나요” 하면서 추가 답변을 유도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사기를 당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교사는 “어? 그것도 괜찮다. 맞는 말이다” 하면서 칭찬해 주고 또 다른 아이에게도 발표를 시켰다. 다양한 답변이 나오도록 쉴 새 없이 독려하는 교사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혔다.

“도움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이라면 낯선 사람을 더 쉽게 믿기도 합니다.”

“사기꾼이 자신감 넘치고 설득력이 있다면 의심을 하다가 믿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사기꾼을 믿는 상황이라면 자연스럽게 동조할 것 같습니다.”

반 학생들은 토론을 한 뒤에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답변을 공책에 적는다.

◆ 다양한 학생들의 생각을 한데 모아서 비교

교사는 사기꾼이 사람들을 잘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 보라고 주문했다.

“우선은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의사로 변장하면 그 분야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할 겁니다.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들통 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안 들게 믿음직스러워 보여야 합니다.”

“한패가 될 사람을 고용해 사기꾼의 말을 입증하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더 잘 믿을 것 같습니다.”

“의사로 변장했다면 관련된 자격증이나 증명서를 보여주는 등, 증거를 제시하면 더 쉽게 속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말솜씨가 좋아야 할 것 같아요. 현란한 말을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기꾼을 믿게 됩니다.”

“사기꾼이 너무 자신 있게 사람들 사이에 등장을 합니다. 사람들은 계속 속아 넘어갑니다. 사기꾼이 머리가 좋은 것 같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발표를 하면서 거들었다. 책에 실린 주인공의 행동을 비평하는 데 열중했다.

교사는 “아~ 맞다, 맞아” 하면서 학생들 답변에 일일이 응답해 줬다. 일부 학생들은 “이해가 안 가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고 한 학생은 “그냥 맞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럴 때마다 교사는 ‘이렇게 생각해 봐라’, ‘저것도 생각해 봐라’, ‘네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했겠니?’, ‘너는 어떤 상황에서 잘 속지?’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자극을 줬다.

◆ 학생들 생각을 서로 비교하게 한 뒤에 글쓰기 과제 부여

“다음 주에는 어휘와 문법을 복습합니다. 지난번 시험 결과 문법이 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과제는 ‘사기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오는 겁니다.”

크라우디아 으데코벤 교사는 과제를 내주면서 6월 18일에 독일어 시험을 본다고 공지했다. 시험 방식은 논술문 작성으로, 자기 관점을 논리적으로 적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토론을 할 때도 그렇고, 글쓰기 과제를 할 때도 그렇고, 여러분의 생각을 적어야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틀에 박힌 생각보다는 얼마나 창의적으로 다양하게 생각을 했는지 살펴볼 겁니다.”

딜타이김나지움의 국어 수업에서는, 과목명은 ‘독일어’지만 실제로는 ‘통합 교육’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생각을 하도록 마당을 마련해 놓고, 끊임없이 발표를 시키고, 조리 있게 글로 정리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독일 모든 중·고교의 독일어 수업도 딜타이김나지움과 거의 같은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국어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 EBS 교재로 내신과 수능 공부를 하는 한국 학생들의 국어(한국어) 공부 방식과는 근원적으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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