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32)] “이공계 학생들도 공학 지식을 글로 표현하는 글쓰기 능력을 갖춰라”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32)] “이공계 학생들도 공학 지식을 글로 표현하는 글쓰기 능력을 갖춰라”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09.0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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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창간 47주년 특별기획> 독일 함부르크공대 중앙학생지원처 학술적 글쓰기 프로그램
▲ 2015년 5월, '제2회 함부르크공대 학술적 글쓰기의 작은 밤' 세미나가 열렸다.

<독서신문>은 창간 47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함부르크(독일)=신향식 특파원] “슬로우 모션이 노 모션보다 낫습니다(Slow motion is better than no motion). 글쓰기 작업은 자꾸 미루지 말고 밀어붙여야 합니다.”

2015년 5월 20일 오후 6시,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함부르크공대(Technische University Hamburg) F동 세미나실. 학생 150여명이 ‘제2회 학술적 글쓰기의 작은 밤’(Die zwiete kleine Nacht des wissenschaftlichen Schreibens an der TUHH)에 참석하고 있었다. 함부르크공대 중앙학생지원처(ZSB)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마련한 행사다. 공과대학 학생들에게도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2년째 열렸다. 함부르크공대는 함부르크대학과 별개의 대학으로 독일의 명문 공대 중의 하나다.

“공학을 공부하거나 공학 분야에서 일할 때 글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읽기와 글쓰기는 이공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졸업하고 나서도 공학 분야의 지식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이날 글쓰기 행사에서 진행한 첫 강의 주제는 ‘논문 작성 때 참고할 10가지 목록’이었다. 함부르크공대 학업상담 연구원인 안네 로제 잔데링크 씨가 발표를 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최대한 흥미 있게 다룰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술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단어들을 나열하는 차원과는 다릅니다. 사실관계를 철저히 조사하고 연구해야 하며, 내용은 구조적으로 잘 짜여 있어야 하고, 이해하기 쉽게 글을 전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글쓰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공 공부와 함께 글쓰기도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안네 로제 잔데링크 씨는 “논문 지도 교수와 규칙적으로 만나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여러분이 쓴 글이 이것저것 지적을 받을까봐 두려워하지 하지 말고 무조건 규칙적으로 교수를 찾아가고 반드시 대화 내용을 기록하라”고 말했다.

“참고문헌의 양과 질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최근에 발표된 학술문헌에서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이때 관심 있는 정보와 도움이 되는 내용을 확실히 구분해야 합니다. 개요도 명확하게 짜고 단락들이 서로 연관성 있게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논문 구성은 교수와 상의하여 설정하기 바랍니다. 글의 가닥과 실마리도 잘 검토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푹 빠져서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잡아야 하는데 너무 광범위하지 않도록 연구범위를 잘 설정해야 한다”면서 “문제제기를 명쾌하게 해야 주제도 명료해지고 연구 가치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 글쓰기 세미나를 마친 뒤 함부르크공대 학생들은 강사와 궁금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함부르크공대는 ‘학술적 글쓰기의 작은 밤’ 외에도 다양한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중앙학생지원처의 글쓰기센터에서 담당하고 학사, 석사, 박사 과정에 따라 수준에 맞게 지도한다. ‘어떻게 졸업 논문을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막힘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쓰기 프로젝트의 중심 구조는 어디에 있는가?’, ‘글쓰기에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까?’ 등 다양한 질문을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글쓰기 프로젝트, 글쓰기 과제, 전공실습 보고서 등 상황에 맞는 글쓰기 상담 서비스를 준비해 놓았다.

함부르크공대 글쓰기 프로그램으로는 첫째, ‘일반 글쓰기 강좌’가 있다. ‘수업 글쓰기’라고도 부른다. 교내 교육센터에서 제공하는 글쓰기 관련 과정을 위해 교수들, 엔지니어들, 연구자들, 조교들이 강의한다. 학술적 글쓰기 능력을 키우고 싶으면 글쓰기센터로 연락하면 된다.

둘째, ‘학부 과정 글쓰기’가 있다. 학부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훈련하는 프로그램으로 글쓰기 능력을 개선하는 과정이다. ‘논문 글쓰기 초보과정’ 워크숍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학술적 글쓰기를 위한 기본기를 지도한다.

셋째, ‘학술적 글쓰기’ 프로그램이 있다. 논문을 쓰는 데 필요한 각종 문헌을 효율적으로 찾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구글을 검색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전문지식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헌 관리가 정보 관리에 도움이 될까?’ 등을 주제로 교육한다.

넷째, ‘지원서 쓰기’ 프로그램이 있다. 함부르크공대 경력센터에서는 학생들이 기업체 실습을 신청할 때 필요한 지원서 작성을 도와준다. 지원서를 잘 쓰는 방법을 서로 공유하고 모범 예문도 제시한다.

다섯째,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을 위한 글쓰기 과정도 있다. 글쓰기 워크숍과 개인 트레이닝으로 글쓰기 기술을 개선하게 도와주고 출판 기술도 가르쳐준다. 여섯째, 문서조판 프로그램(LaTeX) 교육과정도 있다. 함부르크공대 평생교육원에서는 방학 중에도 초보자나 숙련자에 상관없이 문서조판 프로그램으로 글을 편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오전 9시부터 12시 30분까지 컴퓨터로 진행한다.

함부르크공대의 글쓰기 1대 1 첨삭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한다. ①오리엔테이션 ②개요짜기 및 자료 모으기 ③ 다듬지 않고 거칠게 쓰기 ④초고 수정보완 ⑤최종 교정 및 정정 순이다.

▲ 함부르크공대 중앙학생지원처 글쓰기 지원부의 마티아스 분텐쾨터 부장

‘학술적 글쓰기의 작은 밤’을 기획한, 함부르크공대 중앙학생지원처 글쓰기 지원부의 마티아스 분텐쾨터 부장을 만나보았다. 중앙학생지원처는 학생들 생활을 지원하는 부서로 독일의 거의 모든 대학에 다 있다.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방법, 공부 시간을 계획하는 방법, 시험에 대비하고 응시하는 계획 등을 조언하고 시험 공포를 느끼는 학생들에게는 심리상담도 해 준다. 마티아스 분텐괴터 부장은 영문학 전공자로 글쓰기 조언을 하고 직업교육도 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학생들을 돕는다.

- 행사를 마련한 계기는 무엇인가?

“일부 독일 사람들은 중고교에서 글쓰기 기술을 배우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기서 배우는 것은 일반적 글쓰기이므로 대학 입학 뒤에 학술적 글쓰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학생중앙지원처에서 주최하고 함부르크공대 도서관과 스포츠지원기구 등이 협력하여 이 행사를 열었다.”

- 독일의 다른 대학에 비해 앞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함부르크공대는 순수 공학을 교육하는 학교라서 인문학, 사회과학 등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에 비해서는 좀 늦었다. 2014년 2학기부터 시작했다.”

- 무엇에 초점을 맞춰 지도하나?

“졸업논문 등 학술적 글쓰기 위주로 지도하지만 직장생활에 필요한 비즈니스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도록 가르친다. 이공계 기술자들도 글을 많이 써봐야 한다. 공대생들은 설계도나 그리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글쓰기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은 오해다. 대학 공부를 하고 사회에 진출한 뒤 직업인으로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글쓰기 실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 두 가지 차원에서 글쓰기 역량을 키워 주려는 게 목적이다.”

- 미국과 독일 대학의 글쓰기 교육을 비교한다면?

“미국은 대학에서 글쓰기를 많이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은 글쓰기 교육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미국을 참고하고 있다. 미국은 모든 대학에 글쓰기센터가 있지만 독일에는 전체 대학의 15~20퍼센트 정도만 있다. 독일 대학의 글쓰기 교육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 희망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나?

“글쓰기 프로그램은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학문적 글쓰기에 관한 일반적이고 종합적인 글쓰기 정보를 제공하는 행사다. 글쓰기를 경험하는 데 집중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글쓰기 전반을 다뤄서 학생들이 많이 참석한다. 주로 글쓰기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이 온다.

- 그다음으로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

“두 번째로 중간 수준의 글쓰기 프로그램이 있고, 마지막으로 글쓰기 조언 프로그램이 있다. 개개인에게 맞춤식으로 조언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학생들이 많이 참석하지는 않는다. 첨삭이라기보다는 글쓰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도움말을 전해 주는 정도다.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학문적 글쓰기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차원이지 직접 첨삭해 주지는 않는다. 학생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를 들어보고 그에 맞는 글 전개 방식을 알려준다.”

- 글쓰기 조언의 예를 들어본다면.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어떻게 주제를 정하느냐인데 이것부터 조언한다. 글의 구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도와준다. 예를 들어, 심리학에 관한 글을 쓴다면 어떤 내용과 글 구성이 좋겠는지 상담을 해 준다.”

▲ 함부르크공대 글쓰기 세미나의 글쓰기 강사들

- 글쓰기 수업은 어떻게 하나?

“강사와 학생이 제시문을 같이 보면서 글 구성을 분석해 본다. 학생이 써온 글을 보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첨삭까지는 아니고 방향 제시를 해 주는 데 그친다. 직접 만나서 1대 1로 진행하는데 교환학생이나 실습생으로 떠나면 이메일로 주고받고 전화로 통화하면서 조언을 해 준다. 학생이 쓴 글을 함께 읽어가면서 피드백을 하는 방식은 독일의 전통적 글쓰기 지도방법이다.”

- 글쓰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뭔가?

“문제 해결력을 강화해 주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자기가 쓴 글의 문제점을 발견해 직접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나은 텍스트를 만드는 게 아니라 더 나은 텍스트를 쓰는 인재를 키우는 게 목표다.”

-어떤 부분을 스스로 해결하게 하나?

“먼저 어법적으로 맞는지 확인하게 한다. 말이 되는 문장인지도 점검하게 한다. 이때 빨간 펜으로 줄을 그어서 첨삭하는 게 아니라 모범 예문을 제시해 주고 비교해 보게 한다. 두 번째, 인용할 때 적절한 절차를 거쳤는지, 출처를 정확하게 제시했는지를 살피게 한다. 세 번째, 글의 구조가 명확한지 확인하고, 네 번째로 글의 끝맺음을 잘했는지 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글을 읽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다른 작품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본다.”

- 글쓰기 세미나는 보통 어떻게 구성되나요?

“일반 강의가 있고 워크숍이 있다. 일반 강의에서는 우선 강사가 앞에서 테마에 관해 이야기한다. 개요를 설명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그다음에는 그룹별로 토론을 한다. 수업 뒤에도 모르는 내용을 질문할 수 있다. 워크숍에서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한다. 강사가 동기부여를 해 주고 일반강의보다 토론도 더 많이 한다. 스스로 점검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 강사진은 누구인가?

“교수만 강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가 글쓰기 강사로 나선다. 정보학 전공자는 학문적 글쓰기를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소프트웨어로는 어떤 게 있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방법을 제시해 준다. 경영학 전공자는 경영인으로서 어떤 게 요구되는지 글쓰기와 연결해서 설명해 준다. 함부르크공대에 시험관리과가 있는데 졸업논문에 요구되는 형식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그 외에 엔지니어도 있고 사회학자도 있고 주요 전공자들이 많이 온다.”

- 함부르크공대의 글쓰기 프로그램을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나?

“이공계 대학생들은 인문학 전공자에 비해 글을 많이 쓰지 않는다.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글쓰기 행사를 강화할 계획이다. 강사들에게 글쓰기를 더 잘 지도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재교육도 실시 중이다. 공대생들은 고학년으로 올라가야 긴 글을 쓰기 때문에 저학년 때부터 글쓰기 경쟁력 떨어지지 않게 지원해야 한다. 이론뿐만 아니라 실용적 글쓰기도 필요하다. 글을 쓸 때 겁을 먹지 않게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지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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