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인 북] 연변에서 민족이란? 조선족 교원의 한숨과 걱정 - 박영희 『두만강중학교』
[포토 인 북] 연변에서 민족이란? 조선족 교원의 한숨과 걱정 - 박영희 『두만강중학교』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4.0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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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민족이라는 말은 글로벌시대라고 변할 것은 없다. 아니 글로벌화할수록 더욱 진하게 와 닿는 말이다. 피가 섞여 있고 얼이 살아 있고 무엇보다 글과 말이 살아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만주.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고 윤동주 장준하가 다닌 명동학교가 있던 곳. 이곳에 해방 전 2400여개를 헤아리던 조선족학교는 이제 180개만 남았다. 르포작가 박영희가 연변의 10개 학교 13명을 만나 그들의 말을 기록으로 남겼다.

연변 교사들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 사회에 불어 닥친 한국 취업바람으로 인해 떠나면 유능한 자, 못 떠나면 무능력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말한다. 어떤 학교는 한중수교 이후 학생 수도 6년만에 800명에서 76명으로 줄었다. 부모들이 한국에서 벌어온 돈으로 북경 천진 상해 등 대도시로 이사한 것. 그래서 학교는 통폐합됐다. 한국바람이 태풍보다 더 무섭다고 회고한다.

 
1990년대 중후반 조선족 사회는 봉건사회가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해외 취업, 국제결혼, 불법 체류, 사기, 결손, 이혼, 불륜 등 모두 낯선 용어들이 사회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는 교육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년 교원은 찾아볼 수 없어 교단은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남아 있는 자는 바보인가. 박봉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아 교육 현장을 지키는 그들의 공통점은 우리 것을 지키려는 열정이었다.

훈춘에서 20년 넘게 조선어문만 가르쳤다는 박향숙 교원은 ‘민족’에 대해 매우 단호했다. “만약 내 아들이 한족 여자와 결혼한다면 노라고 하겠다고, 그리고 한족 교사 중에서 조선족학교로 오고 싶어 하는 교원이 더러 있는데, 때도 나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학교마저 그들 손에 내준다면 중국에 동화되는 건 시간문제란 말이죠. 학교에서 조선어를 배운 뒤 집으로 가서 한어로 대화를 한다면 민족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제발 조선족다운 주체 의식 좀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곳에서 우리말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가르치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 믿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조선족학교에 휘날리는 중국 국기를 바라보며.

두만강중학교
박영희 지음 | 작은숲 펴냄 | 264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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