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병 기
내 고장의 봄은
희뿌연 배나무밭 사이로 온다
병풍산 꽃샘바람이 아무리 맵다해도
매꽃눈 실팍하게 아귀는 튼다
둑길 저 만큼에서
쑥바구니 이고 달려오시는 어머니의 깃발
이때가 되면 가시네들은 웃음이 많아진다
솔밭 안개 속에서 아침을 여는 비들기가
세상 돌아가는 일 일러주고
세상 살아가는 일 가르쳐 주던가
순순이 논밭 갈며 살아온 사람들
툭 쏘는 사투리로 일찍 깨어나 있기 때문에
꽃샘바람에 몸살 하는 게 아닌가
- 시집 <사인시>에서
■ 조병기
조병기 시인은 장성 출생으로 1972년 《시조문학》 추천완료 후, 1981년 <경향신문>과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가슴 속에 흐르는 강』, 『바람에게』 등이 있으며 한국시조시학상을 수상했다. 동신대학교 교수이다.
■ 감상
도시의 봄은 사실 봄이 아니다. 바람이 따뜻해졌다고 봄이 아니다. 봄은 도시를 벗어나야 비로소 온다. 만물이 꿈틀거리며 생명활동을 시작하는 자연 속에는 다시 태동하는 우주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숨어 있다. 꽃이 피기 시작하고 새들은 부지런히 울기 시작한다. 여인네들은 모두 바구니를 옆에 끼고 산으로 들로 나물 캐러 나선다. 봄의 유혹에 끌려 나가는 것이다. 봄의 생명들에게 끌려 나가는 것이다. 아니, 봄과 봄의 새로운 생명들을 유혹하러 나서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을 유혹하지 않고서는 살아있다 말할 수 없어서이다. / 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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