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 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긴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낮달 하나를 엿보고자 하는 간절한 동경이다
어느 저녁, 어스름으로 길게 흐르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희미해져가는 바다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낯선 바다 위로 낮게 뜬 어떤 달 하나를 동경하여
그 바닷가에 나를 풍장하려 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여, 사람의 길은 모두 달라서
네게 가는 길과 내게 오는 길은 사뭇 달랐다
- 지평선시동인지 <소나기가 두들긴 달빛>에서
■ 이인순
이인순 시인은 전북 전주에서 출생하여 1991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벌레집〉이 있다. 지평선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감 상
사랑은 대부분 감정상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이기도 하다. 감정상의 문제는 즉발적이고 현재적일 가능성이 많다. 과거와 미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즉발적이고 현재적인 감정에 복잡한 이성적 고려와 과거나 미래적인 것들까지 가세를 시키면 감정은 안타깝게도 쉽사리 그 본능적인 역동적 에너지를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 것은 아니었겠으나 시인은 낮달 하나를 꿈꾸며 긴 여행을 도모하다가 끝내 서로 다른 길임을 알고는 자신의 풍장에 실패했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이런 아픈 사랑, 그러나 아름답기도 한 사랑 한 번쯤은 기억하리라. / 장종권(시인)
저작권자 © 독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