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9) 트렌스젠더 닭과 '해괴제'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9) 트렌스젠더 닭과 '해괴제'
  • 유지희 기자
  • 승인 2015.05.27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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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나무도, 풀도, 돌도 자연은 모두가 의미가 있다. 생물도, 무생물도 존재의 의의가 있다. 과학과 미신의 구분이 약했던 옛사람은 자연현상에 극히 민감했다. 조선시대의 왕과 지배층도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특별한 현상이 일어나면 하늘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하늘을 두려워했다. 지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를 임금과 대신들의 임무 소홀에 대한 징계나 경계로 받아들였다.

이때 왕은 '해괴제(解怪祭)'를 지내게 해 분노한 하늘을 위로했다. 왕은 구체적으로 음식을 줄이고, 술과 유흥을 삼가며 근신했다. 대사면령, 세금탕감 등의 정책을 실시했다. 원성이 높은 백성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해괴제는 괴이한 일을 해소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다. 해괴제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종묘에 벼락이 치고, 큰 지진이나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 때 많이 행했다. 또 운석이 떨어지고, 부엉이가 왕의 침전 위에서 울고, 바위에서 소리가 나고, 기형 동물이 태어나는 등 비상식적이 일이 발생할 때 지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암탉이 수탉으로 바뀔 때 지낸 해괴제가 많이 등장한다. 세종 19년(1437년)에는 충청도 해미현에 사는 강제로가 키우던 암탉이 수탉으로 변해 고사를 지냈다. 과학정신이 투철한 세종도 암탉이 수탉으로 변한 것은 두려워한 듯하다. 임금은 해괴제를 지내는 한편 강제로의 집에 내시를 보내 수컷으로 변한 닭의 벼슬, 발톱, 깃털을 살펴보게 하였다.

세종은 처음에는 부엉이와 꿩이 경복궁에서 울면 해괴제를 지냈다. 그러나 집권 후반부에는 자연현상으로 이해했다. 재위 29년(1447년)에는 꿩이 궁궐로 날아오는 소동이 벌어졌다. 신하들은 "꿩이 솥귀에 올랐더니 은나라 왕실에 재앙이 있었다"며 해괴제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세종은 "산 옆에 궁궐이 있으니 새가 날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에 이 때문에 해괴제를 지내면 뒷날 귀신을 숭상하는 실마리를 열어주게 된다"며 반대했다. 세종 22년(1440년)에는 전라도 관찰사가 강진현의 민가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바뀌었음을 보고했다. 세종은 이때도 해괴제를 지내지 않고 무시했다.

중종 9년(1514년)에는 풍창군 심형의 집 암탉이 수탉이 변했다가 죽어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다음해에는 한성부 관리인 안처명이 수탉으로 변한 암탉을 대궐로 가지고 와 승정원에 보고했다. 이를 들은 임금은 사실여부를 조사하게 한 결과 장서원의 하인 형손이 키우던 닭이 생후 반 년 만에 수탉으로 변한 게 밝혀졌다. 이 같은 음양이 바뀌는 현상에 대해 조선시대 사람들은 세상이 잘못되고 있는 탓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극히 드문 현상이지만 닭의 성 전환은 가능하다는 게 학자들의 시각이다. 닭은 보통 왼쪽의 난소만 기능을 한다. 그런데 질병이나 충격 등으로 손상되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오른쪽 난소가 활동한다. 그래서 난소가 정소로 크고, 남성호르몬을 왕성하게 분비하면 암탉이 수탉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논리다. 그래도 생식기관 불완전성으로 2세는 생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닭의 성 전환은 요즘도 가끔 일어난다. 몇 년에 한 번씩 외신을 장식한다. 2004년에는 중국의 한 농가에서 수탉이 알을 낳은 사례가 보고 되었고, 2006년 영국에서는 9개월 동안 암탉으로 산 뒤 수탉으로 변신한 예도 있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수탉이 암탉으로 변해 알까지 낳았다. 영국 뉴스사이트 <오렌지>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는 설명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보도에 따르면 닭은 원래 붉은 볏을 가진 수탉이었다. 농장에 여우가 습격했고, 많은 암탉이 죽었다. 얼마 뒤 수탉이 암탉과 같은 행동을 하면서 알도 낳았다. 이에 대해 UN의 다국적 연구진의 한 명은 종을 잇기 위한 생존유전자의 본능으로 해석했다.

닭의 성별 전환 가능성은 1만분의 1의 확률이라고 한다. 닭의 성별 전환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닭을 통해 인간사회의 소수자를 생각한다. 절대다수만 자연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소수자도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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