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희 기자의 '문화가 융합 리포트' _ (7)힐링이 아닌 행복을 찾아서
임선희 기자의 '문화가 융합 리포트' _ (7)힐링이 아닌 행복을 찾아서
  • 임선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6.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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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라스트 홀리데이>

▲ 임선희 칼럼니스트
최근 우리 사회를 점령한 키워드 중 하나는 '힐링'이다. 스님이 트위터로 건네시는 담박한 말씀에 위로 받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지친 마음을 달랜다. 힐링 공연, 힐링 음식, 힐링 여행 등 평범한 단어 앞에 '힐링'을 슬그머니 갖다 놓으면 사람들이 찾아드는 마법이 일어난다. SNS에 맛있는 음식 사진, 멋진 여행지의 풍경 사진을 올리곤 '힐링된다'며 자랑스레 덧붙인다. 누구나 힐링을 이야기하고 모두가 행복을 갈망하는 세상, 하지만 더 행복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힐링은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깐의 위안이 사라지면 공허가 찾아온다. 성냥이 만들어내는 온갖 환상이 사라지면 소녀는 다시 차디찬 세상에 홀로 떨어지듯. 그래서 무조건 '아파도 괜찮다', '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가져라', '긍정적인 마인드로 웃으며 살자'와 같은 교조적인 말을 늘어놓는 책이나 미디어가 더 이상 미덥지 않다. 그럼에도 단어 하나에 매달릴 정도로 사람들은 많이 외롭고 지쳐 있는 듯하다.

아마도 <라스트 홀리데이(Last Holiday, 2006)>는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꿈꾸는 일탈의 판타지를 집대성해놓은 영화일 것이다.(연관검색어로 '힐링 영화 추천'이 뜰 정도) 근근이 살아가던 주인공 조지아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꿈꿔왔던 일들을 하나씩 실천하는 이야기. 그녀는 몇 주 남지 않은 삶을 행복으로 마감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을 들고 체코의 고급 호텔로 떠난다. 얼마 남지 않은 삶, 하루하루를 새로운 경험으로 꾸미며 그녀는 자유와 행복을 만끽한다. 삶의 매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조지아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신의 팍팍한 삶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되묻게 된다. 행복해지려면 저렇게 당장 어디론가 떠나 돈을 물 쓰듯 써야 하는 걸까, 생각만으로도 황당하고 겁이 난다.

어쩌면 우리가 '행복'이란 녀석을 잘못 알고 있던 것이 아닐까. 행복해지려면 접근법을 달리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은국 교수의 책 『행복의 기원』의 출발이다. 행복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새롭게 정의를 내린다. 학문 간의 통섭이 유행인 만큼 심리학도 여러 학문과 손을 잡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진화론'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험난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생존과 번식, 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뇌는 생존과 관련된 행동에 쾌락을 느끼는 쪽으로 발달했다. 외톨이보다 무리의 생존 확률이 높으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되었다. 자손을 낳아야 했으므로 연인과의 스킨십에 황홀감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행복은 생존의 보상이자 지표인 것이다.

『행복의 기원』은 기존의 시각을 돌려놓아 행복으로 가는 현실적인 길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라스트 홀리데이>는 그 길을 충실히 따른 한 여자의 생생한 경험담이다. 체코로 떠난 조지아가 느끼는 행복도 거창한 것이 아니다. 동경하던 셰프 디디에와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 마음을 비우고 고통을 인내하지 않아도 그녀는 충분히 삶을 건강하게 즐겼다. 행복은 관념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다. 또한 인간은 새로운 자극에도 금세 적응하기 때문에 크기에 상관없이 빈도가 높아야 한다. 복권 당첨이나 고시 합격과 같은 큰 행복을 한 번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을 베어물 때와 같은 소소한 기쁨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우리 사회에 힐링 열풍이 부는 것은 본능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라고 머릿속 사령탑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호에 응답하는 방향이 잘못되었다. 우리는 참으로 동물적이며 뇌도 단순하다. 그렇기에 내면의 안정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힐링이 속 빈 강정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행복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힐링을 주지 않는 책과 스크린 너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주는 힐링 영화는 입을 모아 행복의 요인으로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꼽는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나 물질로부터 초월한 자세가 아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케이크를 한 입 먹자. 함께하면 즐거운 사람을 만나자. 그리고 사랑하자.

■ 글쓴이 임선희는?
'씨즈온' 문화전문기자다. 책, 연극, 영화 등 문화예술계 전반을 다루고 있다. 각자 독립된 개체가 아닌 예술의 큰 틀에서 융합과 창의성 넘친 글을 쓰고 있다. sault_sie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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