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와 독서
여름휴가와 독서
  • 조석남
  • 승인 2013.07.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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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 독서신문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장마 속에서도 초복은 어김 없이 찾아왔고, 어느덧 피서철이 다가왔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87.2%가 ‘올해 여름휴가를 다녀올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직장인이 올해 여름휴가에서 가장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대다수가 여름휴가의 목적으로 ‘정신적 안정·신체적 휴식’과 ‘독서, 공부 등의 자기계발’ 등을 꼽았다.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휴테크’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휴테크’란 ‘휴가’(休)와 ‘테크닉’(Tech)의 합성어로 ‘휴가로 생긴 여가시간을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고 창의성을 키우며 자기계발을 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휴테크’에서 가장 권장되는 방법은 독서이다. ‘진정한 휴식은 번잡한 일상을 떠나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보며 내일을 준비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할 때, 평소 읽고 싶었으나 일에 쫓겨 읽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 느긋하게 읽는 모습이야말로 휴가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현들은 여행과 휴가를 책읽기의 방편으로 많이 활용했다. 『청장관전서』에는 이덕무가 구양수의 문집을 싸들고 북한산으로 향하는 친구 이중오에게 써준 글이 실려 있다. 글귀 중에 ‘산수 중에서 맑고 시원하기로 북한산만한 게 없으니, 구양수의 글을 읽는 데 북한산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느냐’는 말이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세종, 성종과 같은 임금들은 집현전과 홍문관 관리들에게 독서 휴가를 주는 ‘사가독서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은 사촌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옷을 벗거나 부채를 휘둘러도 불꽃 같은 열을 견뎌내지 못하면 더욱 덥기만 할 뿐’이라며 ‘책읽기에 착심(着心)해 더위를 이겨나갈 것’을 권고한다. 조선 중기 문신 윤증이 쓴 「더위(暑)」라는 시에는 옛 선비들의 여름 독서 모습이 함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구름은 아득히 멀리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 식힐 음식도,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제일이구나.’

책읽기를 뜻하는 한자말에는 ‘독서’ 말고도 ‘간서(看書)’, ‘피서(披書)’ 등이 있다. 독서가 보통 정독이나 숙독처럼 정신을 몰두해 하는 책읽기를 말한다면, 간서나 피서는 가벼운 책읽기에 가깝다. 철학, 역사서와 같은 딱딱한 책보다는 소설, 추리물에 어울리는 독서법이다. 이렇다보니 무더운 여름철의 책읽기는 독서보다는 ‘피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휴가로 주어지는 여가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농사를 짓는 땅도 봄, 여름, 가을 열심히 일을 하고 겨울에는 휴식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듯이 배움을 통한 휴식 과정을 거쳐야만 지속적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이번 여름에는 인파가 북적거리는 복잡한 휴가보다 ‘쉼’과 ‘회복’을 주제로 책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휴가가 됐으면 한다. 이웃이 힘들 때 고개 돌리고 흥청망청할 게 아니라 자신을 재충전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레코드판이나 얼룩덜룩한 청바지처럼 ‘여름휴가의 책’은 지난 세기의 유물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여름 휴가철마다 ‘읽을 만한 책’ 목록이 나오지만, 여행 가방에 책을 고이 챙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친구가 올린 맛집 사진도 즉시 확인하고, 최신 연예 소식도 알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수영복과 자외선 차단제 사이에 책 몇 권은 꼭 넣어갔으면 한다.

‘책은 배반을 모르는 인간 사상의 친구’라고 한다. ‘사상의 친구’와 그래도 가깝게 할 수 있는 때가 휴가철이다. 일상의 권태를 씻어내는 것도 피서길에서다. 가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활짝 넓히는 일에 시간을 내보자.

추억이 살아 숨쉬는 고향집 툇마루나 피서지 옆 느티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책을 읽는 재미. 자연의 화음인 매미 소리, 솔바람 소리와 함께 책장을 넘기는 재미. 이번 휴가엔 이런 멋진 ‘여름 풍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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