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숭례문
  • 방재홍
  • 승인 2013.05.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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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재홍 발행인     ©독서신문
[독서신문 방재홍 발행인] 숭례문이 지난 5월 4일 화마(火魔)에서 부활했다. 5년 3개월만의 일이다. 2008년 2월  땅값보상에 불만을 품은 70대 노인의 방화로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역사인 국보1호가  속절없이 불타 무너져 내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600여년을 살아남은 숭례문이 어처구니없는 화재로 사라질 뻔 했다. 새 단장을 한 숭례문은 전통적인 기법과 우리 고유의 재료로 조선시대의 원형을 되찾았다. 일제 때 훼손되었던 좌우측 성벽까지 다시 쌓아 숭례문 본래의 웅장한 모습을 되찾게 했다. 여기에는 복구에 참여한 수많은 장인들의 땀과 소나무를 기증하거나 성금을 모아 준 국민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숭례문은 문화재 복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번 훼손된 문화재를 다시 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국민들은 새삼 깨달았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화재 예방시스템 등 방재 체계가 강화된 1차적인 성과도 있다. 사실 화재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훼손보다는 도로개설이나 건축 등 개발로 인한 문화재 훼손이 더 심각하다. 서울 시내 곳곳에 산재한 수많은 성곽의 흔적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성에 사용된 돌들이 개인 주택이나 공공기관의 축대와 주차장 담벼락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일대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상점 건물인 시전행랑 유구는 이곳 재개발로 상당부분 사라졌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법을 두고도 갈등이 첨예하다. 정확한 고증없이 이뤄진 잘못된 복원도 문제다. 숭례문과 함께 세워진 숙정문은 500년간 없던 문루를 지난 1976년 복원의 이름하에 세워 올렸다. 숙정문과 혜화문 편액은 글쓰기 순서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문화재는 ‘보존이냐 개발이냐’에서 타협이 있을 수 없다. 타협은 곧 훼손과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숭례문의 복구는 문화유산의 가치와 전통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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