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 황인술
  • 승인 2012.12.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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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 와이드 철학논술
▲ 황인술 논설위원     © 독서신문
[독서신문] Ⅰ. 생각해보기
 
빅토르 위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기상천외한 인물이었다. 장수하며 방대한 문학 작품을 써낸 작가이자 재능 넘치는 데생 화가이며,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정치인이자 만족할 줄 모르는 만인의 연인으로 ‘세기의 전설’이었다. 그의 삶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으며 (…) 급작스럽게 정치적 성향을 바꾸면서도, 인도주의적인 자신의 신념만큼은 충실하게 지켰다. 정치적이기보다는 이상주의적이었던 그는 ‘권력가’라기보다는 자유와 정의를 섬기는 ‘사상가’였다.
-델핀 뒤샤르
 
  “단테가 시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로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
-위고가 『Les Miserables』을 설명한 말. 
 
▲ 위고는 1830년대에 프랑스 문단에서 낭만주의의 선도자로 명성을 떨쳤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시인이며 소설가·극작가로 유명하다. 위고는 1802년 나폴레옹 군대 장군인 아버지 레오폴드 위고(Leopold Hugo)와 왕당파 집안 어머니 사이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등지로 옮겨 다니며 1812년부터 파리에 정착하여 기숙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와 시를 즐겼으며 181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콩쿠르에 이어 1819년에는 투르즈의 아카데미 콩쿠르에 시가 입상을 한 것을 계기로 형 아베르와 함께 낭만주의 운동에 공헌한 잡지 ‘문학수호자(Conservateur Litteraire)’를 창간하였다.
  1820년대에는 전통적인 형식인 ‘서정 단시(Les Odes)’를 발표하여 성공하고, 고전주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를 중심으로 젊은 시인들과 화가들은 ‘세나클(Cénacle/ 뜻을 같이하는 문학가, 예술가의 모임)’을 형성하여 위고는 사실상 낭만주의자 지도자가 된다.
  그는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날 무렵부터 약 13년간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경향이 짙은 서정시를 포함한 많은 걸작을 남겼다. ‘가을의 나뭇잎(Les Feuilles d'Automne, 1831)’, ‘황혼에 대한 노래(Les Chants de crepuscle, 1835)’, ‘마음에 대한 소리(Les Voix interieures, 1837)’, ‘빛과 그림자(Les Rayons et les Ombles, 1840)’, 희곡 ‘왕은 즐긴다(Les Roi s'amuse, 1832).’ 등을 발표 하였으며 특히 소설 작품으로는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 1831)’가 있고 또한 4권으로 이루어진 유명한 서정 시집 ‘뤼 블라(Ruy Blas, 1838)’등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시에서 개인적 감정이나 심정을 표현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그는 시인은 말없는 민중에 대한 목소리를 시로써야 하며, 민중의 선두에 서서 지도자처럼 앞장을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1843년부터 10년간 위고 삶은 연극 ‘성주(Buraves 1843)’공연 실패와, 장녀인 레오폴딘이 사고로 목숨을 잃어 실어증에 걸리며 힘든 여정의 삶을 살았고, 이 시기 펜을 놓고 정치활동을 하며 삶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였다.
 
▲ 고아 소녀 코제트. 1862년 초판본에 수록된 에밀 바야르의 삽화.    
  1851년 루이 나폴레옹 쿠데타를 반대하여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였다. 망명 생활동안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반대하는 내용의 ‘정벌 시집(Les Châtiments, 1853)’ 딸과의 추억과 철학적 사상이 담긴 ‘정관 시집(Les Contem-plations, 1856)’,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52)’등을 발표 했으며 그 외 몇 편의 소설과 시집 및 희곡도 썼다.
  1870년 보물전쟁에서 패배한 나폴레옹3세가 몰락하자 파리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귀국했으며 귀국 후에도 창작 활동은 계속되었다. 1881년 2월 26일, 위고의 80세 생일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군중이 그의 집을 찾아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한 위고는 8월 31일에 유언장을 썼다. “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적어도 내겐 충분했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이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아왔고 그 속에서 죽을 것이다. 진리와 광명, 정의, 양심, 그것이 바로 신이다. 가난한 사람들 앞으로 4만 프랑의 돈을 남긴다. 극빈자들의 관 만드는 재료를 사는 데 쓰이길 바란다.(...)내 육신의 눈은 감길 것이나 영혼의 눈은 언제까지나 열려 있을 것이다. 교회의 기도를 거부한다. 바라는 것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단 한 사람의 기도이다.”
  2년 뒤 그는 위 유언장을 더욱 짧게 고쳐 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5만 프랑을 전한다. 그들의 관 만드는 값으로 사용되길 바란다. 교회 추도식은 거부한다. 영혼으로부터 기도를 요구한다. 신을 믿는다.” 1885년 5월 18일에 위고는 폐렴으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22일에 파리에서 사망했다. “검은 빛이 보인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날 밤 파리에는 천둥과 우박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6월 1일에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졌고, 200만 명 인파가 뒤를 따르는 가운데 그의 유해는 팡테옹에 안장되었다.1885년 5월 22일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감하였다.

  1850년 후의 낭만주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 소설에서는 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가 대두되었고, 시에서는 고답파를 거치며 상징주의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며 19세기를 살아온 긴 세월 동안 수천 편의 시를 쓰고 모든 장르의 작품들을 발표한 위대한 시인, 위대한 극작가, 위대한 소설가, 위대한 사상가였고 또한 위대한 투쟁가이기도 했다. 한때 그의 목소리는 프랑스 민주주의 양심이며 감정과 희망의 목소리였으며 그의 박애주의, 인도주의 사상은 19세기 후반에 전 유럽 사회에 빛을 밝혀주었다.

Ⅱ. 생각 확대하기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
  젊은 시절부터 사회 고발 소설을 구상했던 위고는 1845년부터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 16년 만에 망명지인 건지 섬에서 탈고했다.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 집필 당시에는 제목이 『레 미제르(Les Misères, 비참함)』였지만, 나중에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로 바뀌었다. 주인공 이름 역시 원래는 ‘장 트레장’(Jean Trejean)이었지만, 나중에는 ‘장 발장’(Jean Valjean)으로 바뀌었다.

1. 줄거리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던 무렵 장 발장은 홀로 된 누이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부짖는 어린 조카들의 참당한 광경을 그대로 볼 수 없어 한 조각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5년 형을 받는다. 복역 중 장 발장은 누이와 조카들의 굶주림이 걱정되어 탈옥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형별만 누적되어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형기를 마친 후 교도소 생활에서 해방 되어 알프스 산 밑 작은 소도시 디뉘 거리에 나타난다. 그는 누더기 같은 허름한 옷차림,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여인숙과 음식점, 가정집 등을 전전하나 이미 그가 전과자라는 소문이 나돌아 아무도 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교도소에서 조금씩 모은 약간의 돈이 있음에도 매정하게 내쫓긴 것이다. 심지어 개집에서도 사나운 개에게 쫓겨나고 만다. 더 걸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나는 개보다도 못한 신세로구나!’ 탄식하면서 성당의 돌로 만든 의자 위에 쓰려진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일러준 성당 사제관 문을 두드려 미리엘 주교로부터 따뜻한 음식과 쉴 곳을 제공받는다.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과 깨끗한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쉴 수 있었지만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사제관의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게 잡혀온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미리엘 주교가 경찰에게 은접시는 그에게 준 것이라 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미리엘 주교는
  “이것을 가져가라, 그리고 정직한 인간이 되어마오. 네 영혼은 내가 사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말하면서 나머지 은촛대까지 얹어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무쇠같이 단단하고 용광로 같이 끓어오르던 장 발장의 증오심과 반항적 기질은 녹아 없어지고 변화된 인간으로 부활하게 된다. 하지만 반성의 눈물을 흘리고 미리엘 주교 집을 나온 장 발장은 다시 유혹에 빠져 가난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은전 한 닢을 도둑질하게 되고 도둑질 한 그 순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통곡 한다.
  이후 2년여 세월이 흘렀다. 장 발장은 이름을 마드레느라 고치고 과거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게 되며 노력 끝에 공장을 세우고 노동자에게 많은 급여를 주며,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사회사업에 힘을 쏟게 된다. 시민들의 존경을 받게 된 마드레느는 시장으로 추대되어 가난한 시민들을 구제하고 보호한다.
  그의 공장 여공 중에 팡틴이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공장에 취직하기 위하여 어린 딸 코제트를 테나르디 부부에게 맡기나 그들은 코제트를 학대하면서 팡틴 부인의 급여를 양육비로 몽땅 빼앗아 간다. 딸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매춘부로 몸을 팔게 된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마드레느 시장에게 구출된다.
  마드레느는 코제트도 구해 줄 것을 약속하나 불행히도 장 마르티이유 사건이 일어나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장 마르티이유라는 노인이 앞서 장 발장이 소년의 은화를 훔친 진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게 된 사건이었다. 이 사실을 안 시장 마드레느는 아무 죄도 없이 교도소로 가야 하는 노인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시장의 지위와 영광을 가지고 행복한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장 발장임을 밝히고 벌을 받을 것인가’ 마음속으로 양심과 싸우던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진범이라고 밝힌다. 이 충격으로 팡틴 부인은 숨을 거둔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장 발장은 코제트를 구출하기 위해 작업장에서 교묘히 탈출하여 테나르디 집에서 혹사와 학대받고 있던 코제트를 구출하여 파리 교외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쟈베르 경감에게 추적 당하게 되어 옛날 자신이 도와준 포슐르방 노인의 도움으로 수도원에서 일하게 되고 코제트는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는 왕당파와 공화당파가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 공화당파 당원인 마리우스 퐁메르시 청년은 공원에서 만난 코제트를 사랑하게 된다. 포슐르방 노인이 죽은 후 장 발장은 코제트를 데리고 수도원을 떠난다.
  1833년 6월 5일 파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 중 장 발장은 쟈베르 경감의 목숨을 구해준다. 끝까지 추적을 거듭하면서 장 발장을 체포하려던 원칙주의자인 쟈베르 경감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장 발장에게 깊은 감동을 느껴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춘다.
  장 발장은 폭동 진압으로 중상을 입고 쓰러진 마리우스 퐁메르시를 등에 업고 하수도를 통해 도피한다. 시가전도 끝나고 마리우스 퐁메르시 상처도 회복되어 코제트와 마리우스 퐁메르시는 결혼한다. 늙고 병든 장  발장은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면서 목숨을 거둔다.
  “너희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아! 빛이 보인다. 나에게 더 가까이 오려므나 나는 즐겁게 숨을 거둘 수 있다.”

2. 휴머니즘 문학의 최고 걸작
  문학은 파괴된 인간성을 복원하고, 기득권을 위한 제도나 폭압적인 권력을 고발하고, 억울하게 희생되어가는 사람들을 대변해왔다. 즉, 가난한 자와 약한 자로부터 인간에 대한 고귀한 가치를 발견하여 그들이 겪는 고통과 고단함을 통해 인간은 숭고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 신으로 부터 사랑받는 고귀한 존재임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이 기득권층을 위한, 물질 획득이 목표가 아니라 인간 영혼 속에 들어있는 자유와 평등, 조건 없는 사랑, 헌신적인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이는 살아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이며, 가치 있는 삶으로 사회의 균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활력을 넣어주는 원천이 된다.
  이러한 작품으로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디킨스 『위대한 유산』, 톨스토이 『부활』이 있다. 이들 작품은 사람에게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사람으로부터 방황하고 좌절한 영혼이 구제받아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휴머니즘의 승리를 나타내고 있다. 지위와 관계없이 사람이 중요하다는 휴머니즘에 대한 개념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상생의 평화와 복지를 실현시키려는 박애사상을 뜻한다. 
  그러나 프랑스대혁명 시기 ‘라 브리’ 마을의 날품팔이 노동자 장 발장이 누이동생과 조카 와 살면서 겪는 생활고 끝에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체포되어 5년형의 선고 받아 형을 살게 되는 사회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없다.
  교도소는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아가며, 심한 육체노동을 강요한다. 육체가 갇히면 정신도 함께 갇히게 되어 극심한 고립감에 빠지게 된다. 이때 장 발장은 남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 나머지 목숨을 건 탈옥을 시도하다 붙잡혀 형은 19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1815년 형기를 다 채우고 교도소에서 나와 사회에 북귀하나 중년이 된 사내,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면서도 자신을 파멸로 이끈 사회에 대해 뼈에 사우치는 분노와 증오심을 품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만인은 신 앞에 평등하다면 억울한 사람은 생겨나지 않아야 한다.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면 사람은 도둑질하게 되어있다. 맹자는 “생계수단이 든든해야 마음도 든든해진다(恒有産 恒有心 항유산 항유심)”하다고 했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제2, 제3 장 발장은 생겨날 것이다.
  때문에 휴머니즘 운동은 중요한 것이다. 사회악이라고 규정한 사건에 대해 발단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살펴보고 반성과 성찰 없이 처단, 격리, 구금하는 방법은 옳은 방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표 소설이『레미제라블』이다. 빅토르 위고 장편소설『레미제라블』 뜻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힘없는 불쌍한 사람들은 인류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때문에 혁명은 위기 때마다 사람들을 불러 보았다. 프랑스 대혁명은 부유한 지배층과 가난한 서민층의 빈부격차가 심하게 되어 사랑과 자비가 사라진 자리에 불신과 갈등이 들어와 첨예하게 대립되던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면 클수록 휴머니즘은 사라지고 극단적인 위화감과 괴리가 자리 잡아 사회가 불안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한 인간의 이야기가 『레미제라블』이다.
 

 
▲ 영화 <레미제라블> 스틸컷  


Ⅲ. 생각정리하기
 
1. 장 발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초기 로마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포에니 전쟁 때에는 전쟁세를 신설,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감수했다. 그들은 제일 먼저 기부를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에 갖다 바쳤다. 이것을 본 평민들도 앞 다퉈 세금을 내게 됐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이 나자 전시국채를 발행, 유산계급과 원로원 의원 및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들만 구입토록 했다. 평민들에겐 전비 부담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또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미덕은 중세와 근대 사회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표본으로 간주됐다.
  한 사회의 상층부가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 한다. 프랑스어에서 파생한 이 말은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뜻한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위세를 독점하는 만큼 이들은 이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상층집단의 규범적 태도이자 전략이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윤리적 덕목과 부의 사회적 환원을 강조해 왔으며, 이것이 다름 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전통을 이뤄왔다
  빅토르 위고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서민 출신 주인공 장 발장이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유럽에서는 소설 속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로 상류층 자식들이 입학하는 영국 최고의 명문인 이튼스쿨의 학생들은 전쟁이 나면 앞장서서 전쟁터로 달려가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한 학급 전체가 전쟁터에서 전사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2. 쟈베르 경감의 법지상주의(法至上主義)
 
   國無常强無常弱 奉法者强 則國强 奉法者弱 則國弱(有度)
   국무상강무상약 봉법자강 칙국강 봉법자약 칙국약(유도) 
               
  “항상 강한 나라도 없고 항상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것이 강하면 강한 나라가 되고, 법을 받드는 것이 약하면 약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法不阿貴 繩不撓曲 法之所加 智者弗能辭 勇者弗敢爭 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 故矯上之失 詰下之
  법부아귀 승부요곡 법지소가 지자불능사 용자불감쟁 형과부피대신  상선부유필부 고교상지실 힐하지
  邪 治亂決繆 羨齊非 一民之軌 賞善不遺匹夫 故矯上之失 詰下之邪 治亂決繆 羨齊非 一民之軌 莫如法
  사 치란결무 선제비 일민지궤 상선부유필부 고교상지실 힐하지사 치란결무 선제비 일민지궤 막여법
  屬官威民 退淫殆 止詐僞 莫如刑 刑重則 不敢以貴易賤 莫如法 屬官威民 退淫殆 止詐僞 莫如刑 刑重則
  속관위민 퇴음태 지사위 막여형 형중칙 부감이귀역천 막여법 속관위민 퇴음태 지사위 막여형 형중칙
  不敢以貴易賤 法審則上尊而不侵 上尊而不侵則主强 而守要 故先王貴之而傳之 人主釋法用私 則上下不
  부감이귀역천 법심칙상존이부침 상존이부침칙주강 이수요 고선왕귀지이전지 인주석법용사 칙상하부
 
  “법은 귀족을 봐주지 않는다. 먹줄이 굽히지 않는 것과 같다. 법이 시행됨에 있어서 智者도 이유를 붙일 수 없고 勇者도 감히 다투지 못한다. 과오를 벌함에 있어서 대신도 피할 수 없으며, 선행을 상줌에 있어서 필부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 잡고, 아랫사람의 속임수를 꾸짖으며, 혼란을 안정시키고 잘못을 바로 잡으며, 例外를 인정하지 않고 공평하게 하여 백성들이 따라야 할 표준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에는 법보다 나은 것이 없다. 관리들을 독려하고 백성들을 위압하며, 음탕하고 위험한 짓을 물리치고 속임과 거짓을 방지하는 데에는 형보다 나은 것이 없다. 형벌이 엄중하면 귀족이 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못하며, 법이 힘이 있으면 임금은 존중되고 침해받는 일이 없다. 임금이 존중되고 침해받는 일이 없으면 임금의 권력은 강화되고 그 핵심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옛 임금들이 이를 귀중하게 여기고 전한 것이다. 임금이 법을 버리고 사사롭게 처리하면 아래 위의 분별이 없어진다.” “법은 귀한 사람이라 해서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곳이라 해서 굽혀 긋지 않는다.”는 말이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즉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비자

3.  자유와 평등의 관계(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근대 이전의 시대에는 인간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사회 그 자체의 근거를 제공하는 우주론의 일부로까지 생각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제시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인데, 그는 “자유민과 노예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노예상태가 노예에게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은 명백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한쪽이 더 우수하고 다른 한 쪽이 열등하며, 한쪽이 지배하고 다른 한쪽은 지배 받는다”고 적고 있다. 인간의 불평등을 이렇게 설명하는 경우에는 인간의 불평등이 자연적인 동시에 신이 제시한 우주질서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불평등을 개선하거나 불식시킬 어떠한 노력도 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루소는 인간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인 불평등이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나이, 건강, 체력, 신장, 정신능력, 감각 등의 차이를 통해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약속에 의거하여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정해지거나 적어도 허용되는 것으로서, 사회적인 불평등 또는 정치적인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반하면서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특권과 이권, 남보다 많은 재산을 차지하거나, 남보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거나, 남보다 많은 사람을 자신의 권위에 복종시키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불평등 중에서 루소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불평등이다.
 
4. 민주주의 원리인 자유와 평등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 핵심 요소로, 민주 사회에서 개인 간 상호 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개념들이다. 자유와 평등을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상호 보완하면서 민주주의를 끌고 나가는 요소로, 이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성립되기 어렵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란 각 개인이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자신의 욕구에 따라 삶의 조건들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만일 이러한 자유가 제한되면 보람 있는 삶을 실현할 가능성은 그만큼 위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모든 개인과 집단이 자신들의 욕구 실현만을 주장하거 다른 사람들의 욕구 실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갈등과 충돌만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나아가 각자가 무제한적인 자유를 주장하는 사회에서는 상호간의 다툼 때문에 실제로는 욕구를 실현하기도 어렵게 되고 만다. 따라서 민주주의 아래에서의 자유 경쟁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제약은 사회 구성원, 다시 말해 모든 개인이나 집단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결코 선별적이거나 차별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 출처 : 서유석, 『자유와 평등은 양립할 수 있는가』

 Ⅳ. 논제 찾아보기
  사회와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 큰 원칙은 법치이다. 빅토르 위고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보듯 쟈베르 경감은 피도 눈물도 없는 법치 맹신주의자다. 그는 법에 살고 법에 죽는다. 그에게 정의는 오직 합법과 권위밖에 없다. 모든 위법은 부정의(不正義)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은접시를 훔친 장 발장에게 은촛대까지 얹어준 관용을 베푼 미리엘 주교와 크게 대비된다. 법치가 아닌 사람이 목적이라는 문제의식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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