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마스크
하얀 마스크
  • 천상국
  • 승인 2007.08.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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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스크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오월을 계절의 여왕 이라 한다.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오월을 눈물, 콧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나의 아내다.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이 기간 동안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짐에는 틀림없는 사실 이다. 이 병원 저 병원에 가서 어려움을 호소 해보지만 의사는 강 건너 불구경 이다. 근본적인 치료는 어렵고 그때그때 증상만 완화해 줄뿐, 현대 의학 기술의 한계라는 것이다.
 
선무당이 장구 탓한다. 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남들은 화창한 날씨에 야외로 나가 산과 들에 핀 형형색색 꽃밭 속에 마음껏 봄의 향연을 즐기는데 아내는 외출의 어려움을 하얀 마스크에 의지 하면서 지내야 하니 불편함을 말로 표현 할 수가 있겠는가? 이번에는 기침감기 까지 동반 하여 심적 고통이 더 하는 것 같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 이른 새벽, 아내 기침 소리에 잠을 깬 나는 따뜻한 보리차물 을  아내 에게 건네면서 피곤한 기색이 저려있는 얼굴을 물 꾸러미 쳐다 볼뿐이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을 먹고 나서 고색창연한 화창한 봄날 가벼운 운동 겸 산책으로 아내와 함께 한강 둔치 광나루를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각자 특유의 걷는 방식으로 운동에 여념이 없다. 겨우내 퇴색된 잔디도 이제는 녹색물결로 바뀌어 듬성듬성 노란색, 분홍색 조각으로 수를 놓았다. 집 가까이 자연을 마음껏 접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무척 다행 이다. 문명의 이기품인 자동차 지나가는 굉음, 암사대교 공사현장에 세워진 소름 끼친 거대한 쇠말뚝 들이 내 귀에 내 눈에 없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체 아내의 손을 잡고 한강 물가 가까이 다가앉았다. 불어오는 강바람이 이제는 훈훈한 느낌을 주고 있다.
 
시간의 흐름, 세월의 변함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내 가슴, 내 피부는 실감 하고 있었다. 간혹 하얀 마스크를 통해 아내 기침 소리가 나 혼자 만이 아님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저 멀리 강 건너 보이는 작은 형체 들은 분명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있음을 예견하듯이 보이지 않는 아내 마음 역시 기나긴 세월 동안 곰삭아 아주 잘 익은 도타운 정으로 꽉 채워져 있음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랑, 봉사는 한갓 시해자의 자기도취에 빠진 착각에 불과함 이다. 나는 아내 에게 답답한 마스크를 벗어줄 것을 간곡히 요구 하였다. 아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동안(動顔)에 그려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 하고 싶은 마음이 이유였다.
 
나이 듦을 아쉬워하고 서러워하는 기색이 숨길 수없는 얼굴 표정에 고스란히 배어있음을 나는 항상 못 마땅하였다. 병에 일그러지고 나이에 쪼그라드는 느낌, 육중한 시선이 정말 싫었다. 한강수에 떠있는 이름 모를 철새 두 마리가 유유자적 하며 먹이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서로 사이좋게 번갈아가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이 무척 평화롭게 보였다.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봄의 정취에 정신이 없는데 난데없이 길 건너 풀숲 속에서 하얀 토끼 두 마리가 나와 좁은 도로 위를 잠시 배회 하더니 이내 풀숲으로 사라진다.
 
아내와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쪽 방향으로 한숨에 달려갔다. 저만치 풀숲 속에 하얀 물체가 보였다. 커다랗게 자란 풀숲을 헤치면서 조용히 다가가 자세히 보니 어느 누가 집에서 사육하는 집토끼를 풀을 먹이기 위해 여기에다 방목 한 것이다. 하얀색 바탕에 빨간 두 눈, 열심히 풀 먹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 이였다. 
 
어려 을 때 시골에서 직접 길렀던 그때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마 아내는 도회지에서 자라 이런 장면이 새로워 을 것이다. 아내는 조금 더 가까이 접근을 시도해 본다. 조용히 살며시, 토끼 움직임이 없다. 집토끼 원래 본성을 모르는 아내는 그저 신기 할뿐이다. 이내 직접 손으로 하얀 털을 가볍게 만지 작 거리고 있었다. 침묵의시간은 얼마간 소리 없이 봄바람에 흘러가고 있었다. 아내는 답답한 하얀 마스크를 벗어 한쪽 귀에 걸고는 토끼에 정신이 없다. 내 마음이 시원  해 진다.
 
쪼그리고 앉은 뒤 모습이 그 옛날 머리에 흰 수건 둘러쓰시고 밭에서 일하시는 어머님 생각이 아련히 그려진다. 잠시 후 크나큰 제체기 소리에 토끼는 그만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아내는 일어나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은 후 한쪽 귀 에 걸려있는 하얀 마스크를 반대편 귀에 걸고는 숲속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토끼털 감촉이 어떠했소? 마치 하얀 솜사탕 을 입에 대고 사르르 녹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콧물을 훌쩍 된다. 아내는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면서 몇 발짝 앞서 가고 있었다. 나는 집에 가는 도중 재래시장에 들러 구경 하자고 넌지시 아내에게 요구 하였다. 아내 역시 생각이 있었으며  점심에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물어본다.
 
갑작스러운 질문으로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해보와도 입에 당기는 음식은 없었다.  왁자지껄, 사람 사이로 몸이 부딪히고 부딪쳐도 여기만큼 사람의정이 넘치는 곳이 또 있을까? 아저씨, 아줌마 부름에 고개 돌려 눈요기에 한창 정신 팔리다보니 아내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멀어 졌다. 무언의 약속 장소에 와서 보니 장바구니를 한손에든 아내는 진열대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장바구니를 건네 받아든 나는 조용히 아내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여보, 분홍색 마스크로 바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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