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방 가족사
도장방 가족사
  • 김동민
  • 승인 2005.11.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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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소설가 · 문학평론가)




 

성씨가 도장방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도장방이 성씨 몸안에 있다. 성씨네 도장방을 들여다본 사람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도장방이 좁다는 얘기지만 성씨 덩치가 크다는 말도 된다.

 한데 더욱 경이로운 건 성씨가 작업하는 모습이다. 젊은 시절 유도로 날렸다는 것을 입증해 주려는 듯 우람하고 다부진 체격인 데다 손가락 굵기도 여간 아니다. 그런 손으로 도장을 파는 것을 지켜보면 차라리 기적으로 여겨질 판이다. 나무든 뿔이든 수정, 고무, 그 어느 것이든 성씨 손에 들면 예술로 태어난다. 게다가 일을 하는 동안 그는 무아지경, 유아독존 경지에 다다른다.

 “성씨, 좀 쉬엄쉬엄 하쇼. 그러다 병 얻기 딱 십상이오.”
 하지만 그렇게 말 붙이는 이도 듣는 성씨도 그따위 걱정이야 천리는 밀쳐둔 표정들이다. 그 정도로 성씨는 건장한 사십대 중반 사내다. 일감이 없어 탈이지 잠 한숨 자지 않고 석달 열흘 내리 일해도 끄덕 없을.

 성씨가 언제 상처했고 언제 재취를 얻었는지 아는 이는 없다. 전처 소생 갑석이 없었다면 아무도 그가 두 번 장가들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성씨의 갑석에 대한 구박은 도가 지나치다. 솥뚜껑 만한 손으로 벽에 붙은 빈대 잡듯 후려쳤다. 갑석이 코에서 피를 철철 흘려도 등짝을 도리깨질하듯 패댔다.

 중학교밖에 안 나온 갑석은 늘 도장방에 나와 잔심부름을 했다. 그런 중에도 갑석은 틈만 비면 열심히 도장 일을 익혔다. 그걸 또 못 봐주는 게 계모 영산댁이다. 갑석과는 배다른 동생 둘을 낳은.

 “계모 값 작작해라. 친에미 없는 애 불쌍치도 않아?”
 “저기 하늘이 시퍼렇게 내려보신다.”
 보다 못한 아낙들이 한마디 하면 심술은 열 갑절로 늘어난다.
 “왜 괜히 나를 두고 야단들이람. 그래서 저것이 더 밉다니까. 당신들 자꾸 이러면 내 정말….”

 갑석을 제일 애처롭게 여기는 이가 도장방 옆 호떡집 서경댁이다. 영산댁은 제 친자식 둘에겐 질리도록 호떡을 입에 물리면서도 전처자식에겐 먹이는 법이 없다. 자박자박 걷기 시작하는 맏이와 등에 업힌 둘째는 짜구 날 판국이다. 서경댁은 한쪽에 서서 침을 삼켜대는 갑석에게 호떡을 주었다. 고등학생 나이가 되도록 지독히 순진한 게 서경댁이 괜히 부아가 치밀 정도다.

 “츳츳. 저런 착해빠진 아들을 남겨두고 어찌 눈이 감겼을꼬.”

 세탁소 안씨, 헌책방 유씨, 비디오가게 김씨, 꽃집 천씨, 모두 성씨와 영산댁을 보면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 큰 덩치 갖고 여자한테 꼼짝 못하는 그 꼴 정말 두 눈 뜨고 못 보겠다고. 촉새같이 생긴 영산댁 체구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노골적으로 경멸한다. 정말 성씨와 영산댁이 같이 걸어갈 때 보면 이건 영락없이 고목나무 매미다.

 그들은 갑석 혼자 가게에 두고 외식하거나 영화관에 간다. 갑석은 설워할 듯하나 아니다. 그때야말로 갑석이 마음놓고 도장 파는 기술을 익힐 기회이기 때문이다. 성씨는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어깨 너머로 배운 도둑질이다. 한데 묘한 일도 있다. 생긴 거라든지 성격은 죽은 어머니를 빼닮은 갑석이 도장일 하나만은 아버지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은 모양이다.
급히 도장이 필요한 손님이 왔는데 마침 성씨가 없어 갑석이 궁여지책으로 판 적이 있다. 그런데 손님은 퍽 흡족한 얼굴로 돌아간 것이다.

 “석아, 부지런히 배우거라. 학교도 많이 못 다녔으니 도장업이라도 해야 살아가지.”
 인근 사람들이 말하면 갑석은 씨익 웃기만 한다.
 “넌 도장 팔 때 가장 행복하지?”
 그렇게 물으면 갑석은 고개만 끄덕끄덕.
 “죽은 어머니 혼이 도장에 딱 가 붙은 게 틀림없어요.”
 “그래요. 내 언젠가 봤는데, 걔 도장 파는 동안 얼굴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 없었다니까요. 평소엔 늘 구름 낀 하늘같이 어둡잖아요.”
 “두고 봐요. 제 아버지 솜씨 곧 따라잡을 테니까.”

 사람들은 갑석을 얘기할 때 도장을 얘기하고 도장을 말할 때 갑석을 말했다. 정말이지 몸이 호리호리하고 성격이 꼼꼼한 갑석에게 도장업은 천직(天職)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갑석에겐 천적(天敵)이 있다. 이 무슨 해괴하고 기구한 부자 관계더냐. 갑석은 개구리, 성씨는 뱀. 갑석은 쥐, 성씨는 고양이.

 “이눔아! 공짜로 가게를 물려받을 생각일랑 애당초 말어.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네놈은 안 되어.”

 성씨는 지레 못박는다. 그러면 입귀가 늑대같이 찢어지는 게 영산댁이다.

 “호호호. 당신 부자지간에도 그렇게 확실히 맺고 끊는 모습이 좋아 내 당신한테 왔다니까. 암요. 흥. 언감생심, 가랑이 찢어지지, 뱁새가….”
 사람들은 흥분하여 악담을 내질렀다.
 “저도 자식 낳은 여자가, 아무리 눈엣가시라고 해도 그렇지, 팥쥐 엄마가 다시 살아 나왔어.”
 “성씨가 문제지 뭐. 여편네 치마폭에 싸여…. 역시 남자는 여잘 잘 만나야지.”
 “아, 그야 여자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어쨌든 저러다 천벌 받지. 갑석이 생모가 옥황상제께 백 번도 더 빌었을걸.”

 갑석 생모의 한이 하늘을 움직였을까.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났으니. 그렇게 건장했던 성씨가 어느 날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심근경색이라 했다. 그가 쓰러진 곳은 도장방 안이었는데 시신을 밖으로 끌어내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한다.
워낙 몸이 꽉 끼어 빼내지 못했다고. 그런 소문 뒤에는, 인간아. 불쌍한 전처자식한테 도장방 안 넘겨주려는 거지? 하는 빈정거림이 숨겨져 있었다. 천년 만년 도장방 하고 살 줄 알았지? 하는 조소도 섞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기대는 못했다. 도장방이 갑석 손에 떨어질 것이라고는. 영산댁이 어떤 여자더냐. 이제 갑석은 더 큰일났다 했다. 아무리 천륜 잊은 냉혈한일 망정 그래도 아비 성씨가 있어 그곳에 붙어 있었지 이제 독사 같은 계모 등쌀에 하루나 견디랴. 어쩌면 도장방 팔아치우고 딴 서방 얻어 갈 테지.
그나저나 갑석이 신세는 어찌 될꼬.
 그런데… 이 무슨 조화속인가. 갑석 생모 혼백이 또 음우했단 말일까. 사람들은 차마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할말을 잃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맨 처음 사태를 파악한 사람은 서경댁이다. 아니 알아채게 한 것은 갑석이다. 갑석이 배다른 동생 하나는 안고 하나는 걸린 채 호떡집에 들른 것이다. 그것은 성씨 장례를 치른 지 꼭 일주일 만이다.

 “아, 갑석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쟤들 어미는 어디 가고 네가 애들을 데리고…….”
 그러자 갑석의 두 눈에 당장 괴는 게 눈물이었다. 놀라 바라보는 서경댁 귀에 얘기라고 할 수 없는 얘기가 들렸다.

 “그 여자, 얘들 엄마, 도망갔어요.”
 “뭐라구? 도, 도망가? 그, 그럼 이 자식들은 어떡하고……. 아, 아니. 얘들을 버리고 달아났다구? 제 배에서 난 새끼들을……?”
 서경댁은 비명처럼 물었다. 갑석이 주먹으로 뺨의 눈물을 쓱 훔치고 나서 말했다.
 “살아야죠. 저도 살고 얘들도 살고…….”
 “아, 너희들만 어떻게 살아가누?”

 그러고 있는 새 무슨 낌새를 챘는지 근처 사람들이 몰려왔다. 서경댁에게서 전후 사정을 전해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한숨부터 내쉬었다. 어린 세 생명을 보니 도망친 여자를 욕할 마음조차 끼어들 여지가 없는 듯했다.

 “고아원에 보내야 할 텐데. 더 어린것은 유아원밖에는. 갑석이 넌 이제 어디로 갈래?”

 어른들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갑석이 홀연 소리쳤다.

 “아녜요. 얘들 제가 돌볼 거예요. 도장방 하면서요.”
 그러면서 도장방 안으로 들어서는 갑석이. 유리문 안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 눈에는 성씨 한 사람 있을 때보다 그들 셋이 있는 그곳이 훨씬 넓은 공간처럼 비쳤다.
(끝)

독서신문 1388호 [200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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