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와 공자
은행나무와 공자
  • 신금자
  • 승인 2006.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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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겸 칼럼리스트]




스물두세 살 무렵, 서울에서 선배랑 자취를 했다. 
셋방은 대문 옆 자투리땅을 돋워 올린 2층이었다. 층계를 따라 오르면 사뭇 부엌을 통한 방이 길게 누워 있고 게다가 옥상도 있다. 나는 방보다 이 옥상이 맘에 들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옥상에 올랐다. 옥상에서 손을 내밀면 남산이 잡힐 듯했다. 그러니 도서관이 있는 남산에 오르는 날도 많았다.


 

후암동 버스종점에서 좁은 골목길로 접어든 주인집은 정원은커녕 마당도 거의 없다. 그러나 대문과 옥상을 훨씬 웃자란 은행나무가 그 집의 삭막함을 덜어주었다. 가난한 방 창문을 열어두면 노란 은행잎이  하나 둘 기웃거리다 슬그머니 아랫목으로 날아들기도 했다. 그래서 가을이면 나는 그 셋방 창문이 그립고 은행나무가 궁금하다. 지금쯤 포도알 굵기의 은행을 주렁주렁 매달고 주인집 전어구이 냄새에 코를 주억거리고 있을 터이다. 사뭇, 안채 마루는 온 식구들이 식사를 함께 들고 나는 트인 집이어서 훈기가 있었다. 
 
 은행나무는 수형이 크며 아름답고 오래 산다. 은행이란 이름은 종자가 은처럼 희며 열매가 살구모양 같다하여 그리 지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긴 가지에 달린 잎은 어긋나고 짧은 가지에서는 다발로 묶인 모양이다. 나무껍질은 두꺼운 회색 코르크질로 요리조리 갈라져 오른다. 그 둥치 속에 살균. 살충성분이 있어 병충해와 바이러스에 강하다. 특히 은행나무의 열매보다 더 놀라운 약리작용을 하는 것은 잎이라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중에 은행나무가 가장 많은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닐까.

부채꼴의 은행잎은 학창시절 책갈피에 끼워두던 추억거리이기도 한다. 말려서 보면 가장자리 두세 군데가 갈라져 오리발을 닮았다. 이 가을, 가로수 길을 누비는 오리발이 무수히 많다. 그 오리발 탓인가. 은행나무는 수많은 열매를 맺지만 그 열매가 싹을 틔우거나 자생하지 못하나보다. 산속이나 들에 저절로 나서 자란 은행나무를 쉽게 볼 수 없는 이유란다. 
 

예로부터 선비가 공부하는 방 앞에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이는 은행나무가 공자와 관련된 때문이다. 경기도 오산에 공자의 영정을 모신 궐리사가 있다. 공자의 64대손 공서린이 지은 서원에 정조가 공자의 영정을 모시게 하고 궐리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궐리는 공자가 태어나 자라난 중국 산동성 곡부현의 마을이름에서 따왔다.

 공자가 늘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침을 베푼 것과 같이 공서린도 서재 앞에 은행나무를 심어 북을 매달고 후학 양성에 힘쓰며 애지중지 가꿨다. 이후 공서린의 죽음과 서원 철폐령에 문을 닫기도 했지만 후손과 후학들의 복원 노력으로 유교관련 건축문화재로서 의미가 큰 곳이다. 특히 공자의 76대손 공재헌이 중국에 들어가 공자 성적도(108도)를 수입해 보존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는 유림들에게 은행나무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역사다. 나무는 그 같은 관심과 보살핌 덕분인지 어느 한 곳 다치지 않고 푸르렀다. 
 
 가을은 나를 더욱 깊어지게 한다. 올 여름이 유난히 길었던 탓에 가을은 서둘러 떠날지도 모른다. 조급한 맘에 단풍도 들기 전에 궐리사를 찾았다. 어느 하루 바람이 고루 부는 날, 또다시 이 곳을 찾으리라. 은행잎이 우수수 날리면 미처 고운 물 드리지 못한 내 맘도 다소곳하게 내려놓으련다. 가난하고 퇴색된 내 속사람이 고운 단풍에 업혀서 냇물을 따라 강물, 혹은 더 큰 물에 닿아 유유자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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