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책과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관리자
  • 승인 2006.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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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살고 싶습니다.



지난 9월 14일에 개봉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의 원작인 공지영의 장편소설『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인기 순항중이다. 
 
소설『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세 명의 여자를 죽인 사형수와 세 번의 자살을 시도한 여교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사형제도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삶과 죽음, 죄와 벌, 사랑과 용서,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사회적 기준이나 종교적 잣대를 내세워서 저자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관심 받지 못하고 있는 이 소재에 대해서 독자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끔 그 기회를 제공한다.
 
 


유정. 그리고 윤수

소설은 유정의 현재로부터 시작해서 과거(1996~1997년)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면서 끝을 맺는다. 소설의 대부분은 과거의 이야기다.
 
문유정. 그녀는 부잣집의 막내딸이자, 20대 초반에 잘나갔던 가수이자,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이자, 부모가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는 대학의 미술학과 교수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그녀가 도대체 무엇이 불만인지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어느 날 3번째로 자살을 시도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녀에게 고모인 모니카 수녀가 찾아온다. 모니카 수녀는 그녀에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대신, 한 달 동안만 자신과 함께 서울구치소에 가서 사형수를 만나자고 한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유정은 모니카 수녀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유정은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윤수를 만나게 된다.
 
정윤수. 그는 ‘이문동 모녀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삶을 포기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모니카 수녀는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만나기를 청한다. 그리고 어느 날, 모니카 수녀는 자신의 조카 문유정과 함께 윤수를 찾아온다. 

 

 


유정과 윤수의 만남     
 
유정과 윤수의 첫 만남은 짧게 끝난다. 모니카 수녀는 빵을 잔뜩 싸들고 와서는 윤수에게 먹으라고 하지만, 윤수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앞으로는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고 냉정하게 말할 뿐이다. 그런데 유정은 그 짧은 순간에 윤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날 이후 유정은 목요일마다 윤수를 찾아간다. 처음에는 고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갔지만, 한 달이 지난 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간다. 본인이 윤수가 보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일주일에 목요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쑥스럽게 말하는 윤수의 간절한 기다림 때문에 하루도 빠질 수가 없다.

 

 


유정과 윤수가 나눈 ‘진짜 이야기’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온 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을까? 그건 그들이 ‘진짜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삶은 어떻고, 행복은 어떻고 하는 상투적인 얘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꼭 말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말하지 못한 ‘진짜 이야기’를. ‘진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 건 유정이다.
 
유정은 윤수에게 그 동안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녀가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게 만든 그 깊은 상처를. 그녀는 15살에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다. 겁에 질린 그녀는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가 아프다고, 무섭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반응은 의외였다.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사촌오빠를 혼낼 줄로 알았던 엄마는 오히려 다 큰 기집애가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며 유정을 꾸짖었고, 창피한 일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쉬쉬했다. 아버지를 비롯해서 오빠들도 유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외면했다. 후에 큰오빠는 유정에게 자신은 전혀 몰랐다고 말하지만 유정은 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윤수는 유정의 뜻밖의 고백에 당황한다. 부유하게 살고 있는 그녀도 불행하다는 사실에, 아픈 상처 때문에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에 놀란다. 그리고 윤수도 유정에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윤수의 집은 매우 가난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렸는데 참다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그 후 윤수의 동생 은수는 고열로 시력을 잃게 됐고, 아버지는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윤수는 엄마를 찾아가지만 얼마 못가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다가 뛰쳐나왔고, 결국엔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며 거리를 전전하게 됐다. 그리고 어느 날 은수마저 길거리에서 죽는다. 홀로 남아 방황하던 윤수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는데,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그녀는 ‘자궁외임신’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윤수는 아내의 수술비 300만원을 구하려다 살인을 저질렀고, 공범자의 죄까지 뒤집어쓰면서 사형선고를 받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윤수는 평생 불행했다. 엄마한테 버림받은 그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쳤지만, 사회마저도 그를 외면했다. 아무도 그를 사랑해주지 않았고, 그 역시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다.

 

▲ 영화 속 장면들


 
유정과 윤수의 새로운 삶 

 ‘진짜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진심을 다해 어루만졌고, 그 날 이후 두 사람의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사는 것이 너무나 지루하고, 의미 없고, 불행해서 죽음을 원했던 그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일주일에 하루, 단 세 시간의 만남이 그들은 너무나도 행복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윤수가 결국 사형집행을 받게 된 것이다. 유정은 윤수의 사형집행을 막기 위해서 검사인 큰오빠한테 부탁도 해보고, 어렵게 엄마도 용서하지만, 집행을 막지 못했다.
 
 


소설과 영화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원작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영화적 장치를 적절히 활용하여 작품을 조금 더 극적으로 만들었고, 원작을 잘 다듬어서 영화만의 매력을 잘 살렸다.
 
우선 캐릭터가 원작과 조금 다르다. 소설 속 윤수는 일 미터 칠십오 센티미터의 키에, 뿔테 안경을 쓴 흰 얼굴에, 검은 고수머리다. 그런데 영화 속 윤수는 꽃미남 배우 강동원이다. 게다가 강동원은 경상도 사투리까지 쓰며 인물의 매력을 한층 더 살렸다. 원작에서 유정의 외모에 대해 묘사한 부분은 없기 때문에 외모 상으로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지만, 영화 속 유정은 눈물을 많이 흘린다는 점에서 원작과 다르다. 원작에서 유정이 우는 장면은 윤수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구치소 밖에 있을 때 한번 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유정의 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모니카 수녀의 나이가 70이 넘은 것으로 나오는데, 영화에서 배우 윤여정이 연기한 모니카 수녀의 나이는 50대 후반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멜로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스킨십 장면이 거의 없다. 다만 영화에서 유정이 윤수의 손을 잡자 윤수가 쑥스러워하며 “손이 차갑죠?” 하고 말하고, 유정이 웃으며 “마음이 따뜻하다고 자랑하는 거죠?”하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원작에는 이마저도 없다. 윤수가 유정에게 십자가 목걸이를 선물하며 윤수의 손이 유정의 손바닥에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유정은 후에 그 때 윤수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영화와 원작이 가장 다른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다. 원작에서 유정은 윤수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한다. 구치소 밖에서 울고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유정은 모니카 수녀와 함께 윤수의 마지막을 지켜본다. 또한 영화는 윤수의 마지막을 비교적 길게 보여준다. 밥을 먹던 윤수가 두 명의 교도관에게 이끌려 집행장으로 가는 길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 운동화를 흘리는 장면은 실제로도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부님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할 때 윤수는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죄를 빌고, 교도관과 모니카 수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서 유정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 윤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정도 사랑한다고 말하며 흐느낀다.
 
원작보다 영화가 더 좋은 점은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주연배우인 이나영과 강동원 뿐만 아니라, 윤여정, 강신일, 김지영, 정영숙 등의 조연배우들도 포함한다.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덕분에 좀 더 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유정&윤수와 함께한 행복한 시간 
   
작가 공지영은 유정이 큰오빠와 나누는 대화나, 유정의 독백을 통해서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압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정과 윤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이 사형제도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모든 독자가 이 작품을 읽은 후에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처받은 유정과 윤수는 진실한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상처를 치료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고, 상대를 사랑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송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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