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17회)
소설 춘천옥 (17회)
  • 김용만
  • 승인 2008.06.27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통속?”

“예.”

“한 뜻이다, 그 말야?”

“예.”

“맞아. 내가 밝은 얼굴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한 거야. 자네 얼굴에는 만날 먹구름이 끼거든.”

“아무리 애써두 안 되는 걸 워떠케 고쳐유.”

“못 고치면 미스 진을 포기해야지.”

“....”

“안 그래?”

“글쎄유.”

“고치면 미스 진과 행복해질 거구, 못 고치면 미스 진을 놓칠 거구.”

“....”

“그래도 좋아?”

“글쎄유.”

“그래도 성질머리를 못 고치겠어?”

“....”

“대답해!”

“어려운디유.”

“어려우면 때려쳐!”

“왜 자꾸 화만 내세유?”

“자네가 화내게 만들잖아!”

“먄해유.”

“미안한 게 문제야?”

“고쳐야쥬.”

“그래, 고쳐야지. 자넨 역시 똑똑해. 암 똑똑하고 말구.”

나는 주방장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그는 어린애처럼 배시시 웃는다. 착한 모습이다. 소박한 모습이다. 그들은 큰 걸 노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를 얻어 착실히 소박하게 사는 걸 소망할 뿐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미스 정의 마음이 저절로 움직인다구.”

“워뜨케 허능 게 아름다운 거쥬?”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알었슈. 암튼 일은 열심히 헐 팅게 제 속맘만 헤아려주세유.”

“알았어. 나하고 합동작전으로 미스 정 맘을 낚아채 보자구.”

주방장은 고맙다며 연방 헤헤거린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미스 정은 주방장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장담을 해놨으니 그 책임이 어깨를 짓누른다. 공연히 합동작전이란 말을 꺼낸 게 후회스럽다. 어떻게 미스 정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또 미스 정 같은 여자가 주방장 같은 사내의 수준에 매력을 느낄지도 의문이고, 이미 다른 남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판에 주방장에게 장담을 해놨으니, 생각할수록 엉뚱한 약속을 저지른 게 후회스럽다.

미스 정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데, 그런 개인적인 일을, 비협조적이라는 오해 때문에, 냉장고 옮기는 일을 거절할 정도로, 속이 좁아터진 사내인데, 내 딸이라고 해서 “그놈한테 시집가라.”라고 꼬드길 수 있을까?

아무래도 죄를 지은 것 같다. 미스 정에게 죄를 지은 것 같고, 바보처럼 순박해터진 주방장에게 사기를 친 것 같아 마음이 괴롭다.

“너 냉장고에서 맥주 꺼내와. 너도 한 잔 하구. 나 괴로워 못살겠다. 큰 죄를 지었으니....”

 

▲ 그림 송대현     ©독서신문


어제 마신 술 탓에 늦잠을 자고 영업준비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는데, 벌써 손님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손님을 맞이하는 미스 정의 다감한 웃음새가 화려하다. 단골손님인 s업체 송 부장이 대여섯 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홀에 들어선다.

“더우시죠? 시원한 막국수 생각이 간절하셨죠?”

“오늘은 더 예쁜데?”

“내일은 더 예뻐질 거에요. 그래야 왕자님의 눈길을 끌죠.”

“왕자? 누군데?”

“제 눈에 드는 남자요.”

저런 여자에게 어떻게 주방장 말을 꺼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미스 정의 손님 접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본다. 탤런트 k씨와 l씨가 들어선다.

요즘은 인기 연예인들이 자주 찾아온다. 서울 중심과는 거리가 멀어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것이다. 외국인들도 매일 빠지지 않고 찾아온다. 일본인은 물론 미주나 유럽 쪽 서양인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우리 업소에는 의자 좌석이 없고 모두 방바닥 좌석이어서 서양인들은 허릿살을 다 내놓고 다리를 뻗고 앉아 먹는다. 어설픈 자세로 먹고 있는 그 모습이 가여울 정도다. 마늘을 즐겨먹는 서양인들도 있다.

매운데 먹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엄지를 세우며 “베리 굿!” 한다. 물론 ‘very’는 과장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단체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는 플라스틱 용기까지 가져와 보쌈김치를 사가기도 한다. 비행기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밀폐가 잘 되는 용기를 가지고 오는데, 주방 식구들이 김치를 넣고 테이프로 견고하게 봉해준다.

“일본인한테 보쌈김치를 파는 건 정보 유출이라구.”

친하게 지내는 단골의 귀띔이었다. 그의 말은 농담 차원이 아니라 아주 진지한 견해였다.

“보라구. 앞으로 일본 수출 품목에 틀림없이 춘천옥 보쌈김치가 낄 거야.”

“그렇다고 일부러 안 팔 수야 없잖나.”

“일본인들이 단체로 찾아올 정도로 소문난 게 자랑스럽겠지만.... 생각해 보라구. 이 집이 전국은 물론 국제적으로 소문난 것은 그만큼 음식에 권위가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한국 음식의 대표성을 지닌다는 의미인데, 정보유출은 보통일이 아니지.”

“그렇다고 음식을 안 팔 수야 없잖은가.”

나는 넉넉히 웃음을 날렸다. 그의 편협된 성격을 나무랄 필요는 없었다. 만약 대화를 그의 의도대로 전개해 나간다면 나중에는 매국이란 말까지 나오되 될지 모른다.

 

언젠가 미국에 갔을 때였다. 뉴욕에 있는 한국 냉면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바로 내 옆자리에 동포로 보이는 40대 초반의 남자들 4명이 앉았다. 그중 하나가 앞자리 일행에게 말했다.

“너 말야, 모레 서울 가면 잊지 말고 춘천옥에 다녀와. 알지?”

“그래. 그것 땜에 한국에 가는데 잊겠냐.”

“서울에 머무는 동안 몇 차례 가보라구. 샅샅이 살펴 봐.”

“알았어.”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세상에, 뉴욕에까지 이처럼 소문이 퍼지다니. 수 만리 태평양 건너에까지 소문난 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보쌈김치도 사오라구. 고기는 물론이고.”

“아주 쥔을 만나보는 게 어때?”

다른 일행이 말했다. 모두 친구 사이인 모양이었다.

“죄 진 사람처럼 눈치 볼 게 아니구 차라리 그래라. 미국에서 왔는데, 이 참에 보쌈 막국수 집을 열려고 하니,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 보라구.”

“타국에서 고생하다가 겨우 업소를 차리게 되었는데, 망하지 않게만 해달라고 솔직히 사정해보란 말야.”

“어느 잡지에서 읽었는데, 그집 쥔도 어지간히 고생한 모양이더라. 돈 주고 음식 사먹으며 양념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는 게 꼭 도둑질하는 심정이었대. 춘천옥을 처음 꾸밀 때도 인건비가 없어서 쥔 부부가 직접 꾸몄다는 거야. 부부가 시멘트 일도 하고 목수 일도 했다니 시설이 오죽하겠어. 그런 집이 한국의 대표 업소가 되다니.”

“운도 무시할 수 없어.”

“운이 무슨 운이야. 정신력과 노력이지. 춘천옥은 쥔이 글도 잘 쓴대. 앞으로 소설만 쓰겠다는 거야. 잡지를 보니까 말도 아주 수준이 높아.”

나는 입이 근질근질했다. 내가 바로 춘천옥 주인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길거리 포장마차부터 시작하여 별별 고생을 다 치러왔잖은가. 눈물이라도 왈칵 쏟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그들을 반히 쳐다보았다. 그들이 혹 말이라도 걸어오면 자연스럽게 춘천옥 주인임을 밝히고 싶었다.

또 그들에게 여러 고생담과 추억담을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말하고 싶은 게 많다. 다만 들려줄 상대가 없어 입이 열리지 않을 뿐이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