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식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책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도 “문화적 특성이 강한 나라의 기업은 든든한 부모를 가진 아이와 같다”고 말하며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1일부터 9월 26일까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개최한다. 이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은 9,797건 21,600여 점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금속, 도토기, 전적, 서화, 목가구 등으로 폭넓고 다양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회장 기증품 중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이 공개된다.
기증품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인왕제색도’이다. 서울 인왕산 구석구석을 누볐던 겸재 정선의 역작이다. 이 작품은 이건희 회장의 1호 컬렉션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는 기업 활동을 하면서 고려불화가 국내로 돌아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시품에는 고려불화 특유의 섬세한 미를 보여주는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가 포함돼 있다.
또 세종의 한글 창제 노력과 결실을 보여주는 ‘석보상절 권11’ ‘월인석보 권11·12’ ‘월인석보 권17·18’도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우리 말과 훈민정음 표기법,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글은 기막히게 과학적인 소프트웨어”라고 평가했던 이 회장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기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21일부터 내년 3월 13일까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한국미술 명작’을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전시에서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유영국, 권진규, 천경자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거장 34명의 작품 58점을 먼저 선보인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들을 주축으로 세 개의 섹션으로 나누었다.
‘수용과 변화’ ‘개성의 발현’ ‘정착과 모색’으로 이름 붙여진 각 세션에는 백남순의 ‘낙원’과 이상범의 ‘무릉도원’을 비롯해 ‘여인들과 항아리’(김환기), ‘황소’(이중섭), ‘절구질하는 여인’(박수근),‘천 년의 고가’(이성자), ‘한국의 여인들’(김흥수)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