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감성의 문(門)을 열어 지성을 득(得)하는 『문득』시리즈
[서평] 감성의 문(門)을 열어 지성을 득(得)하는 『문득』시리즈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6.05.03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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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사람은 누구나 문득 문득 궁금한 것들이 생각난다. 노을은 왜 붉을까, 우주에서 내가 보일까, 사이렌은 무엇을 의미할까 등등. 그러나 순간적으로 궁금증은 지나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누구나 확실한 목적이 없으면 이를 굳이 알려들지 않는다.

그러나 직업이 글쓰는 사람들은 좀 다른 모양이다. 시시콜콜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늘 반복되는 것들을 깎듯이 예우한다. 그 예우는 그 질문의 대상을 통해 감성의 문[門]을 열게 하고 지성의 한 조각이라도 얻게[得] 한다. 그래서 『문득』 시리즈인가.

저자 유선경은 매일 아침 ‘출발 FM과 함께’의 ‘문득 묻다’ 코너에서 5년 4개월 동안 질문을 던지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적 갈증을 채워주고 세상 모든 것의 존재가치와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내 삶의 문제까지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내 안의 편견을 깨고자 하는 열망을 지녔거나 타인과의 소통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교양 지식이 필요한 독자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고 출판사 측은 이 책의 의미를 전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53개의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볼 수 있는 색은 얼마나 될까? 에서 ‘빛의 화가’ 모네를 끌어들인다. 모네의 말 한 토막. ‘낙엽, 자갈돌, 빛줄기, ...ㅣ그것들의 미세한 색조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형상을 식별하게 될 때 나는 신비와 환희에 가득 찬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여태까지 한 번도 사물을 제대로 본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한 번도’

빛에 대한 인식이 11세기 이슬람 과학자 이븐 알하이삼을 거쳐 17세기 뉴턴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알하이삼이 주장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눈에서 빛이 나와 사물을 밝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알하이삼은 빛의 반사, 굴절, 착시현상 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사물에서 나온 빛이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뉴턴은 프리즘 실험을 통해 빛의 파장으로 색이 달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두운 방에서 빨간 사과에 초록색이나 파란색 빛을 비추면 검정 사과로 보인다. 이래도 사과는 빨간색일까요.

저자는 나아가 햇빛을 말한다. 어김없이 지적 에피소드 한 토막 끼어든다. 조용미 ‘봄의 묵서’에 나오는 말 인용이다. ‘늘 걷던 길이 햇빛 때문에 달라 보이는 시간, 봄볕에 발을 헛디딥니다. 햇빛 때문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달라지다니요 (후략)’

이렇게 저자는 빛을 말하면서 독자를 모네에서 조용미까지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회화의 문도 열었다 수필의 문도 열었다 하면서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고는 알하이삼, 뉴턴을 불러와 지적 호기심마저 채워준다. 햇빛도 한 페이지 반이나 되는 분량을 할애하며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렇게 53개의 질문과 답을 하고 있다. 저자는 잎서 같은 제목의 책을 두 권이나 냈다. 끈질긴 지적 투혼이다.
일부 독자는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 흡사하다고 할 지 모르나 약간 맛이 다르다. 채사장 글보다는 양념 맛이 담백하고 요리가 단품이다. 한 입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은 샌드위치를 풀밭에 앉아 먹는 기분이랄까. 부담 없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좋겠다.

기상을 언제부터 연구하기 시작했을까? 에피소드를 보자. 저자는 오늘날씨를 스마트폰 앱으로 본다고 한다. 날씨는 오랜 세월 신의 영역이었다. 그러다 이런 인식을 깨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인용했다.

‘그레고리우스는 대지진이 1755년에 일어났고 리스본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일로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로 서양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다. 그러나 1755년 11월 1일 아침 첫 번째 일어난 지진으로 10분도 되지않아 도시의 3분의2가 파괴됐다. 두 번째 지진으로 많은 시민이 피난해 있던 항구의 부두가 바다 속에 가라앉아 버렸다. 세 번째 지진에서는 최고 파고 15미터에 이르는 큰 해일이 밀려왔고 여진은 이후 6개월 동안 250번이나 계속됐다.

이 끔찍한 지진으로 시민 2만5천명이 사라졌다. 리스본 인구의 10% 이상이었다. 리스본은 이후 다시는 옛날의 전성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어 저자는 인문학 한 대목을 들려준다. 리처드 험블린의 ‘테라’에 나오는 말. ‘리스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인간은 재난을 신의 심판으로 해석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과학을 발전시켜 오히려 재난을 적극 대비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1755년 11월 1일은 유럽에서 ‘운명의 날’로 불린다. 그러면서 지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연구했고 내진 건축기술이 나왔다.

기상과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더. 노르웨이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무서운 붉은 하늘은 내면의 불안을 반영한 게 아니라 화산폭발이라고 한다. 실제로 뭉크의 스케치 메모를 통해 미국 천문학자가 2004년 천문학 기록을 확인했다.

에피소드마다 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독서 편력이 만만찮다. 덕분에 독자는 이 한 권으로 감성의 문을 열고 들어가 지성을 획득하는 기쁨을 맛본다. 

■ 문득, 묻다 세 번째 이야기
유선경 지음 │ 지식너머 펴냄  │ 344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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