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이청준, 그리고 우리
토마스 만, 이청준, 그리고 우리
  • 독서신문
  • 승인 2015.06.1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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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여섯 번의 특강으로 살펴보는 독일문학, 그리고 우리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 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토마스 만의 작품이 한국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강독 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토마스 만이 일반 독자들이나 한국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주로 번역서들을 통해서였다. 토마스 만 작품의 본격적 번역은 1950년대 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특히 『사기사 펠릭스 크룰의 告白』이 나온 이래, 『선택된 인간』, 『토니오 크뢰거』, 『마의 산』 등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된 그의 작품들이었다.

- 토마스 만과 이청준

▲ 이청준

한국문학의 토마스 만 수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이청준(1938-2008)이라 할 수 있다.

군복무를 마치고 1964년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에 복학한 이청준은 강두식 교수의 토마스 만 강독을 수강하게 된다. 이 강의를 통해 이청준은 토마스 만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받은 한국 작가가 됐다.

김광규 교수의 설문에 따르면, 만의 작품 중 그가 읽은 작품은 『선택된 인간』, 『토니오 크뢰거』,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등이며, 특히 『선택된 인간』에 대해 그는 “문학이나 소설이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치열한 인간의식의 구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만으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철학적 진지성과 음악적 특성을 지닌 작품구성방식’, ‘이원적 세계관의 대립 양상과 액자 양식의 이야기 전개 방식’ 등을 들고 있으며, 만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 자신의 작품으로는, 『병신과 머저리』, 『매잡이』, 『남도사람』 연작 등을 들고 있다.

이청준의 작품 속에서 직접적이고 증빙 가능한 토마스 만의 영향을 바로 찾아보고자 하는 시도는 대개 실패하기 쉽다. 그가 토마스 만한테서 배운 것은 주로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성이고, 작품 구성 방식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의 예술성과 시민성의 갈등 문제가 이청준에게 가장 가깝고 절실한 주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토마스 만은 『토니오 크뢰거』에서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의 입을 통해 예술가라는 것은 ‘요술사’나 ‘곡예사’처럼 ‘수상쩍은 혐의’를 품게 만드는 인간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형제 히틀러(Bruder Hitler)』(1939)라는 에세이에서는 히틀러의 모든 범죄적 속성들이 자신을 포함한 예술가의 특징들과 많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고 썼다. 이는 물론 독재자 히틀러를 저열한 예술가 기질의 인간으로 폄하하기 위해 수사학적으로 동원된 비유이긴 하지만 여기서도 예술가가 사기꾼이나 범죄자와 유사한 기질의 소유자라는 토마스 만의 평소 생각을 읽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토마스 만의 생각이 이청준에게 어떻게 수용됐는지를 보려면, 그의 ‘소매치기’ 연작, 즉 『소매치기올시다- 소매치기, 글쟁이, 다시 소매치기1』(1969), 『목포행- 소매치기, 글쟁이, 다시 소매치기2』(1971), 『문단속 좀 해주세요- 소매치기, 글쟁이, 다시 소매치기3』(1971)을 읽어봐야 한다. ‘만인으로부터 존재의 근거가 부인된 처지이나 사람들과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을 통해 사실상의 존재를 지키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 소매치기 직업의 참맛, 소매치기에도 본분과 도리가 있다’고 이야기한 그의 텍스트들은 토니오 크뢰거가 예술가를 ‘요술사’, ‘곡예사’, 또는 ‘범죄자’와 유사하다는 ‘정신적 비유’를 드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토마스 만적 예술성과 시민성의 갈등 문제는 원래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낭만적 예인(藝人)과 현실적 생활인 사이의 갈등과 같이 비슷한 양태로 전승돼 오던 주제이기도 하다. 다만, 이청준의 경우, 고향에서의 순박한 삶, 서울에서 돈 없는 떠돌이 생활의 갈등 등 여러 양태로 나타난다.

설령 토마스 만의 양극성과 그 갈등에 자극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청준은 예컨대 『서편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판소리 등 전래의 한국적 주제를 새로운 각도로 조명해 보고 오랜 암중모색을 거치면서 한국적 예술가의 문제로 숙성해 인간 일반의 보편적 문제로 승화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토마스 만적 예술가와 이청준의 예술가 인물들과의 직접적 유사성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이청준이 토마스 만의 예술성과 시민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미리 내면화해 놓지 않았더라면, 『서편제』에서 청강수를 둘러싼 소리꾼 부녀의 기구한 운명이나 소리꾼 남매의 기막힌 하룻밤 상봉 같은 처절하게 아름다운 장면들이 한국적인 형상화를 얻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청준은 토마스 만적 주제를 리얼리티를 지닌 한국적 주제로 문화번역을 했을 듯하다.

토마스 만이 이청준에게 도움이 된 점은 무엇보다도 소설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철학적 세계해석’을 담고 있는 장르라는 점을 인식시켜 준 데에 있고, 또, 소설가가 단순한 ‘이야기장이’가 아니라 삶의 희생을 대가로 ‘고통과 영광’을 늘 함께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예술가’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데에 있지 않을까 싶다.

/ 정리=한지은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김경현 고려대 교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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