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낙타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83> 낙타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 독서신문
  • 승인 2015.03.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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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의 풀 향기

▲ 황태영 수필가

[독서신문]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낙타', 신경림)

이 시를 접할 때마다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을 보고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낙타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곤 했다. 낙타는 새들의 지저귐을 간직한 신비의 산도 에메랄드빛 환상의 바다도 휘황찬란한 빌딩 숲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단조롭고 따분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낙타가 그저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행복의 기준을 남들과의 비교우위에서 찾으려고 한다. 부러울 만큼 승진을 해도 자리가 있는 한 끝없이 계속 올라가야만 직성이 풀린다. 평생 먹고 남을 재산을 벌었어도 탐욕은 멈출 수가 없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현란한 삶을 살지만 늘 불안하고 불만 가득하다.

느릿느릿 내딛는 낙타의 걸음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 행복을 외형의 화려함에서 찾는 한 낙타의 삶은 늘 불쌍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행복을 내적 충만이나 자기만족에서 찾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막은 쓸쓸하고 황량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화려한 불빛 대신 오염되지 않은 달과 별과 해를 볼 수가 있다. 휘황찬란한 도시에서는 빌딩 숲에 가려져서 볼 수가 없었던 원시적 아름다움이 맑고 밝게 빛난다. 증오와 배신, 갈등과 다툼, 음모와 복수도 없다.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현란한 피로도 모두를 쳐부숴야 하는 경쟁상대로 보라는 가르침도 없다. 오염되지 않은 영혼 그리고 자연의 순수가 살아 숨 쉰다. 느림과 고행의 상징처럼 보이는 낙타지만 실은 상처받지 않고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낙타를 불쌍하게 보겠지만 낙타는 도리어 사람들을 불쌍하게 본다.

대부분 장미로 덮인 꽃길만을 부러워한다. 돈 많고 출세만 하면 성공한 삶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진탕에 빠지고 먼지를 덮어 쓰던 그 지긋지긋하던 시절에 오히려 삶이 깊어진다. 힘겹게 부둥켜안던 체온이야말로 가장 따뜻한 행복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계산된 화려함보다 소박한 정겨움이 오래 기억되고 그리움 짙다. 신경림 시인은 1970년대 안양 비산동에서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내를 모두 잃었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할머니는 치매로, 아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찰기관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형사가 그의 동태를 살피러 출근하는 바람에 다니던 출판사마저도 그만두어야 했다. 집안의 조사에 실직까지 겹친 최악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암울했지만 희망이 있었고 핍박이 심했지만 그럴수록 들떠서 활기가 넘쳤다고 한다. 진정한 행복은 끈끈한 속정을 나눌 수 있는 그 시절에만 맛 볼 수 있다. 잘남과 화려함, 오만과 독선은 행복처럼 보일 뿐이지 결코 행복을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 남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충실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옭아매는 그 모든 소란함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무처럼 가식 없이 곁에 있어주고 즐거움과 위로를 함께하던 그 순수함이 오래 기억되고 간절함 깊다.

필자는 글 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권의 책을 내고, 또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것은 촌 동네에서 낙타처럼 살았던 어린 시절이 준 선물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포장도 되지 않은 2km 흙길을 단조롭게 반복하여 오가기만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길에서 이후 고속도로나 비행기 항로를 다니며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다. 송구와 가재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차가 지나간 후 흙먼지를 뒤 집어 쓰면서도 정겨움이 있었다. 손자가 올 때를 기다려 화로에서 구워 주시던 할머니의 고구마 맛은 지금도 눈물이 난다. 여태껏 그 어떤 비싼 음식도 그 고구마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준 음식은 없다. 볼품 없고 고단했지만 제사를 지내면 음복을 돌렸고, 아픈 이웃이 있으면 보리밥과 김치를 몰래 가져다 놓았다. 사람답게 사는 이치를 낙타처럼 살았던 그 시절에 체득했다. 곤궁했던 시골의 삶이 광채 나는 명패를 내걸었던 도시의 삶보다 더 큰 스승이었고 더 축복받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화려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부잣집 화단의 장미라서 더 아름답고, 들판의 민들레라서 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지는 꽃도 꽃이고 백합도 할미꽃도 다 꽃이다. 즐거운 삶도 삶이고, 서러운 삶도 삶이다.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도 삶이고, 깊이 성찰하는 것도 삶이다. 마음의 평화와 내적 충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삶이 다 아름답고 훌륭하다.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을 보다가 삶을 마감한다 해도 그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다.

얼마 전 딸아이가 식당에서 힘겹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은 돈이라며 30만원을 내밀었다. 그 30만원이 회사 다닐 때 받던 천만원 월급보다 더 행복했고 더 소중했다. 돈이 전부인듯 하지만 삶에는 돈보다 귀중한 것이 있다. 가졌다고 교만할 것도, 가지지 않았다고 비굴할 것도 없다. 피는 꽃마다 다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어진 순간, 주어진 곳에서 내 소리로 내 색깔로 당당하게 빛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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