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구월의 이틀
  • 독서신문
  • 승인 2009.12.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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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이념 뒤에 숨겨진 뒤틀린 심장
세상을 향한 우익 소년의 소리 없는 비명

[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존재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인 이데올로기가 사람의 인생을 쥐고 흔들 수는 없는 거다.

따지고 보자면 어느 쪽의 이념과 생각을 갖고 있든지 이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좋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인데 엘리트만 사는 것이 좋은 세상이라고 여길 경우 학연, 지연 등이 판을 칠 것이고 모두가 공평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사회주의가 팽배한 세상이 될 것이다.

장정일이 10년 만에 내놓은 소설『구월의 이틀』은 ‘좋은 세상’을 모색하는 탐색과정을 그림 소설이자 금(金)과 은(銀) 두 청년이 세상의 한 일원으로 자라는 성장기를 담은 성장소설이기도 하며, 이념의 문제를 다룬 이데올로기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익청년의 탄생기(성장기)’를 선보이고 싶었다고 한다. “건전한 상식과 나름의 철학을 토대로 한 우파가 많은 나라에서는 ‘우익청년 일대기’로 분류될 수 있는 소설이 많이 있지만 정당성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부도덕한 우파가 득세한 나라에서는 ‘우익청년 일대기’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98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좌파 문학이 쏟아져 나왔지만 우익과 관련된 소설이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어쩌면 대중에게 있어 ‘우익’이란 별로 존경받지 못하는 대상이자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상대로 점철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금과 은은 그 이름이 갖고 있는 상대적인 의미처럼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이념도 뚜렷하게 다르다. 은은 극단적인 우파청년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파에 생각을 담고 있었지만 정치적 논쟁에 끼어들기 싫어 자신을 숨기고 살아왔을 뿐이다.

학창시절 자신을 지도한 국사 선생님에 대한 탄원서를 써서 내자는 동창들의 요구에 은이 ‘국사선생은 전교조니까 안 된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대목만 봐도 그가 얼마나 지독한 우파인지 알 수 있다.

반면 금은 광주 출신으로 지방에서 풀뿌리 운동을 하시던 아버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청와대에서 일하게 됨으로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된다. 단지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 반고경이라는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의 모습은 야망 뒤에 가려진,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빼앗겨 본 적 없는 순결한 청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금과 은을 축으로 삼아 금이 관계를 맺는 반고경과 그의 부모님, 은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지혜와 거북선생, 작은 아버지 등은 금과 은이 스스로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대변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은의 작은 아버지는 은 내부에 잠재하고 있는 성향과 비주류의 목소리를 감지한 후 그것을 더욱 확고하게, 하지만 세상과 역행하지 않을 정도로 깨우쳐주고 그렇게 자신을 점차 알아가는 은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스스로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은의 사회를 향한 이념과 성(性)을 향한 욕구는 건강한 모습이 아닌 다소 비틀리고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는 거북선생을 통해 극대화 된다.

금 역시 자신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구가 연상의 여인인 반고경을 통해 드러나지만 그 욕구는 뚜렷한 대상 없이 허공을 향해 휘두르는 복서의 소리 없는 킥처럼 그의 내면에 응어리진 상처의 덩어리를 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것에 다름없다.

세상을 향한 것이든, 성(性)을 향한 것이든, 그들의 왜곡된 이념 뒤에 존재하는 뒤틀린 심장은 각자의 길을 향해, 살기위한 호흡을 하고 있다.
 
 
■ 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 펴냄 / 338쪽 / 11,000원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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