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살아있는 한국사’ 『고통에 대하여』
[책 속 명문장]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살아있는 한국사’ 『고통에 대하여』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01.13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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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동물 집단에서 우두머리의 역할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종족의 건강한 번식이 있다. 육체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수컷이 암컷들을 독식하면서 열성 유전자의 난혼을 방지한다. 힘이 곧 정의이다. 둘째 먹이 영역의 수호다. 우두머리는 다른 집단이나 뜨내기의 침범에 맞서 영토를 수호해야 한다. 원숭이의 경우에는 기습공격 등의 지략을 동원하곤 한다. 세 번째 역할은 먹이의 권위적인 배분이다. 제한된 먹이를 놓고 서열에 따라 먹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사자든 원숭이든 대장은 빈둥거리고 있다가 암컷들이 실컷 고생해서 잡아놓은 먹이를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먹어치운다. 먹이를 상납받는 건 우두머리에게 당연한 권리다. 우두머리는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 놈이다. 이들이 다스리는 집단은 소수의 무리다. 소수만이 ‘우리’를 구성한다. 

어디에선가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정치가 시작됐다. 동물 집단의 우두머리 통치와 다른 인간의 정치는 어땠을까? 사람들은 지도자의 역할과 권능보다는 그 지도자를 뽑는 다수 사람의 삶과 권리를 더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치를 발명했다. 그런 다음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좋은 정치만 있지는 않았다. 인간이 동물을 닮은 시절도 있었다. 수십 년 전 이 나라에서도 동물 수준의 정치를 연상케 하는 역사가 있었다. 그런 정치를 하는 사람을 일컬어 사람들은 독재자라고 불렀다. 무소불위 힘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동물 집단의 우두머리를 닮았다. 동물의 우두머리는 집단을 굶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인간 독재자는 자기 권력을 위해 국민들을 굶기곤 한다. 동물의 우두머리는 외부 무리와 싸우며 영토를 수호한다. 인간 독재자는 국민과 싸운다. 우리는 동물보다 못하고 더 잔인한 독재자를 역사에서 배웠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인간에게 최소한의 삶이란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자유를 뜻한다.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수준이 동물 무리와 같을 수 없다. 또한 최소한의 삶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의 수준과 현재의 수준이 같지 않다. 과거 기준으로 최소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지금 시대가 더 나은 사회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불과 몇십 년 만에 산아제한에서 출산장려로 국가의 시책이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젊은 세대 부모들은 아이를 여럿 낳아서 잘 키우고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 자신을 잃어버렸다. 과거 기준으로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겠지만, 현재 기준에서는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못한다.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의 정치라면, 도대체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 정치란 무엇인가? 

나는 이제부터 이 시대의 한국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원지로 돌아가 내가 겪은 41년 동안의 역사를 다시금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리고 오늘날 우리 민초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잘했으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기억해내고 독자와 함께 그 답을 찾고자 한다. <19~21쪽>

『고통에 대하여』
김영춘 지음│이소노미아 펴냄│372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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