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타자의 테러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것은 내재성의 테러" 
[책 속 명문장] "타자의 테러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것은 내재성의 테러"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6.22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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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심리적 내부화는 근대에 일어난 폭력의 위상학적 변화에서 중심적인 문제에 속한다. 폭력은 영혼의 내적 갈등이라는 형태로 일어난다. 파괴적 긴장은 바깥을 향해 방출되기보다 내적으로 해결된다. 전선은 자아의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 형성된다. (중략) 양심은 폭력의 전도가 일어나는 장소이다. (중략) 타인을 향한 공격성은 자기 자신을 향한 공격성으로 방향을 돌린다. 인간이 타인을 향한 공격성을 참는 데 비례하여 양심은 더욱 엄격해지고 더 큰 강제력을 발휘하게 된다. <19쪽> 

초자아의 부정성은 자아의 자유를 제한한다. 반면 이상자아를 향한 자기 기획은 자유의 행위로 해석된다. 그러나 도달 불가능한 이상자아 앞에서 자아는 자기 자신을 결함이 많은 존재로, 낙오자로 인식하며 스스로에게 자책을 퍼붓는다. 현실의 자아와 이상자아 사이의 간극에서 자기공격성이 발생한다. 자아는 자기 자신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인다. 스스로 모든 타자의 강제에서 해방된 것으로 믿는 긍정성의 사회는 파괴적인 자기강제 속에 엮여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21세기의 주요 질병으로 떠오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은 모두 자기공격적 특성을 나타낸다. 자아는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있었던 자리에 스스로 생성시킨 폭력이 들어선다. 이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까닭에 타자의 폭력보다 치명적이다. <61~62쪽>

권력은 타자를 스스로 굽힐 때까지 구부린다. 반면 폭력은 타자를 구부려서 결국 부러지게 만든다. <105쪽>

타자의 테러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것은 같은 자의 테러, 내재성의 테러다. 부정성이 없는 이러한 테러에는 효과적인 방어 수단도 있을 수 없다. <147쪽> 


『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지음 | 김태환 옮김 | 김영사 펴냄│232쪽│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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