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작은 크기, 가벼운 무게.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만큼은 크고 무겁다. 도서출판 민음사에서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창간호 1만부 판매’ ‘정기구독자 3,500명’ ‘뉴스레터 5,000명’을 돌파하며 무너져가는 잡지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잡지 <한편>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봤다.
우선 <한편>은 젊다. 민음사에서 인문학 관련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다양한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필자로 참여한다. <한편>은 책보다는 짧은 분량이지만 논문에 버금가는 깊이를 자랑한다. 밀레니얼(millenial) 세대의 독자들이 묻고, 밀레니얼 세대의 연구자들이 답하는 구조인 셈인데, 젊고 똑똑한 독자들과 필자들의 문답은 ‘지금 이곳’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한편>은 하나의 기획 주제 아래 여러 학문을 기반으로 한 열 편의 글로 구성돼 있다. <한편>의 편집을 맡은 신새벽 편집자는 창간호 머리말에서 “글을 가장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종이책을 바탕으로 삼고, 함께 읽을 문헌을 메일링 서비스로 정기 발송하며, 함께 읽는 재미와 대화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공개 세미나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1만부가 넘게 팔린 <한편>의 창간호 주제는 ‘세대’였다. 여기서는 ‘페미니즘 세대’ ‘1020 탈코르셋 세대’ ‘밀레니얼 세대’ 등 당대의 문제를 ‘세대’라는 키워드로 진단했다. 창간호는 언어학자 박동수의 「페미니즘 세대 선언」이라는 글로 시작하는데, 박동수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의제를 가진 능동적 행위자로 부상하고 있다. 나는 이들을 ‘페미니즘 세대’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왜 안 되겠는가?) 이 말은 오늘날의 청년세대 모두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아니라, 청년세대가 페미니즘과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관계 설정 없이는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박동수 「페미니즘 세대 선언」 中
페미니즘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물결’이 됐다. 박동수의 논의처럼 페미니즘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 청년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페미니즘과의 역학관계 속에서 읽어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편>은 세대의 문제를 여러 학문적‧이론적 틀을 통해 풀어내며 시대와 인간의 문제를 고찰한다.
지난달에 출간된 <한편> 2호의 주제는 ‘인플루언서’(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였다. 여기서는 인플루언서가 가진 영향력의 정체를 탐구하는데, 언론학‧수사학‧교육학‧여성학 등을 망라하는 열 편의 글을 통해 영향력의 개념 지도를 그린다. 특히 이유진 <한겨레> 책지성팀장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의 글이 흥미롭다.
“인플루언서와 저널리스트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단순히 ‘기레기’ 같은 멸칭이나 ‘팔이피플’ ‘관종’이라는 적대로 환원할 수 없다. 저널리스트는 인플루언서와 친분을 쌓아 구독자가 많은 1인 미디어에 출연하고, 인플루언서는 매체의 인정을 받아 더욱 영향력을 넓힌다. 저널리스트가 인플루언서가 되고, 인플루언서가 다시 저널리스트가 되는 상호 방향성 속에 놓인 것이다. - 이유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中
인기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는 ‘시네마 지옥’이라는 영화 코너가 있다. 여기에서 영화평론가 전찬일과 영화유튜버 라이너는 각자의 ‘영화적 지식’으로 서로를 조롱하고 희화화한다. 전찬일은 주류 영화평론계에 몸담고 있는 권위자이다. 하지만 그가 첫 방송에서 윤제균 감독의 영화 <해운대>를 칭찬하자 라이너는 <해운대>는 쓰레기 영화이며 ‘구닥다리 플롯의 절정’이라는 혹평을 남긴다. 영화평론가(저널리스트)와 영화유튜버(인플루언서)의 코믹한 대결 구도가 이 코너의 묘미인데, 위 논의에 부합하는 사례일 것이다.
앞선 언급처럼 <한편>은 당대의 청년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을 짧지만 깊이 있게 분석하고 사유하는 잡지이다. 신 편집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겪는 일들을 학술적인 논의로 풀어내는 게 <한편>의 핵심”이라며 “책 한권을 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한편>은 시의성 있는 문제에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이어 “젊은 편집자들은 평소 관심 있던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하고, 젊은 연구자들은 단행본의 긴 호흡에 대한 부담을 덜고, 짧지만 깊이 있는 글을 <한편>에 게재함으로써 색다른 원고 쓰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똑똑한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잡지 <한편>.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