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상영 작가의 고칼로리 응원, “하루가 또 하루를 살게 합니다”
[인터뷰] 박상영 작가의 고칼로리 응원, “하루가 또 하루를 살게 합니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4.20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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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소설가 [사진=김봉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쉽지만 깊고, 재미있지만 슬프다. 독자들의 눈 위로 삶의 생채기를 머금은 글자들이 춤추듯 쏟아진다. 박상영의 책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인기 요인은 바로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들을 지면 위에 적절한 균형으로 펼쳐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의 한가운데엔 무엇보다 작가 박상영의 처절한 ‘상처의 기록’이 있다.

김인환은 책 『의미의 위기』에서 “나는 절실한 상처의 기록을 읽기 좋아한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나와 남의 다친 영혼을 달래는 길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명제를 독자와 작가의 관계로 대입해보면, 독자는 ‘상처의 기록’을 읽기 좋아하는 자이며 작가는 세상의 상처를 언어화해 독자의 다친 영혼을 달래는 자이다.

“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두려 한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같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있는 당신은 누가 뭐라 해도 위대하며 박수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中

‘출근’ ‘퇴사’ ‘외모’ ‘연애’ ‘꿈’ 등 현대인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독자들의 다친 영혼을 어루만지는 박상영 작가.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 그의 첫 에세이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후일담을 직접 만나 들어봤다.

박상영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Q. 첫 에세이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반응이 뜨겁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A. 책 표지는 화려하고 예쁜데, 실은 되게 우울하고 절망적인 얘기거든요. 살쪄서 애인한테 차이고, 직장 상사와 불화하고… (웃음)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실패담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나니까 살아갈 힘을 얻게 됐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Q.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가 에세이에도 묻어난다. 특히 전작 『대도시의 사랑법』과 이번 책이 상당 부분 겹쳐 보인다

A. 첫 번째 소설을 쓸 땐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두 번째 소설집인 『대도시의 사랑법』의 경우 보다 일상의 언어로 쓰자고 마음먹었어요. 진짜 내 옆집에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읽혀야지만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의미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죠. 그래서인지 첫 번째보다 조금 더 경쾌한 측면이 있어요.

이번 에세이집은 『대도시의 사랑법』과 거의 동시기에 작업했어요. 시기가 겹쳐서 그런 것도 있죠. 놀랍게도 이 책이 나오고 나서 『대도시의 사랑법』이 중쇄를 찍으면서 덩달아 반응이 있었어요. 소설이 더 낫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에세이가 더 낫다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물론 둘 다 좋다는 분도 계시고요. (웃음) 작가로서는 이런 반응들 자체가 재밌고 그래요. 기분 좋은 일이죠.

Q. 첫 에세이집이다. 소설을 쓸 때와 가장 달랐던 점이 있다면?

A. 에세이는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는 거잖아요? 화자도 저 인거고. 그래서 쓰면서 오히려 부자유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특히 누군가를 흉보거나 직장 상사 분들에 대한 이야기 쓸 때 그랬죠. (웃음) 물론 제가 다 실제로 겪었던 일이지만 어떤 사람을 특정할 수 없게 이름이나 이니셜을 다 바꿨어요. 누군가가 이 글로 인해서 다치거나 불쾌하면 안 되니까요.

반대로 형식적으로는 에세이 쓰는 게 소설에 비해서 자유롭죠. 소설은 되게 보수적인 장르예요. 눈에 명확하게 보이진 않지만 서로 간에 모종의 합의 된 규칙 같은 것들이 있는데, 에세이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어요. 내용을 만들어 나갈 땐 부자유스러웠지만 형식 자체는 자유로웠죠.

Q. 에세이를 쓰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지?

A. 이번 에세이에 김세희 작가의 소설 한 구절을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요. 제가 집에 책을 너무 많이 쌓아놔서 책이 어디 있는지 도무지 못 찾겠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전화를 해서 이 구절 인용을 할 건데 정확하게 뭔지 좀 알려달라고 부탁했죠. 김세희 작가가 저한테 “참 가지가지 한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웃음)

Q.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밑줄 친 문장이 “이미 만원인 채로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에 몸을 구겨 넣으며 나는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였다. 직장 다닐 때와 비교할 때, 작가의 현재는 어떤가?

A. 요즘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되니까 자유롭죠. 대신에 직장 다니면서 글을 쓸 땐, 엄청 짜증나면서도 내가 진짜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각 같은 게 있었어요. 없는 시간을 쪼개면서 글을 써서 그런지 효율성은 진짜 좋았죠.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면서부터는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서 쓰기 전까지 엄청 예열을 해야 해요. 지금은 주간지에 장편을 연재 중인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하루라도 글을 안 쓰면 큰일 나는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글을 쓰고 있죠. 안 그러면 진도가 나가질 않으니까요.

박상영 소설가 [사진=김봉곤]

Q. 김현경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구성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하는 것, 그들 모두에게 자리를 주고, 그 자리의 불가침성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쓴 「살만 빼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챕터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A. 저도 그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정상 체중이었을 때도 있었고, 살이 많이 쪘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소위 말하는 ‘보통의 범주’에 포함됐을 때 사람들의 태도와 그렇지 않았을 때 태도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느낀 사람이에요. 그래도 저는 남자니까 조금 덜한 편이죠.

책에 등장하는 후배 사원이 저에게 살만 빼면 괜찮을 것 같다, 긁지 않는 복권이라고 말한 것도 사실 자기 딴에는 칭찬이라고 한 말이에요. 저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 말에는 알게 모르게 살찐 존재에 관한 멸시와 비하의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어요. 그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사회적으로 학습된 그 무엇에 우리 모두가 길들여져 있는 거죠.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저는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살찐 여성의 경우 사회적으로 굉장히 심하게 비교‧평가당하는 부분이 있어요. 심지어 살찐 어린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죠. 미디어를 봐도 전부다 마른 사람들이에요. 그게 참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다양한 체중의 사람들이 있는데 살찐 사람들이 환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명백해요. 미디어에서도 ‘잘 먹는’ 존재로서만 비만인을 소비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Q.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대학원 생활은 작가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

A. 대학원은 문학계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 대학원에 많았어요. 혹시 등단을 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계속 마주칠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다니면서 마냥 편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것은 지금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을 다 대학원에서 만났다는 사실이에요. 강화길 작가, 송지현 작가, 임승훈 작가를 대학원에서 만났는데, 제겐 너무 소중한 인연이에요.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얻은 것도 있지만 친구들과의 스터디를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추리소설 모아 읽기, 그해 문예지에 발표된 모든 단편소설 읽기 등 실력 있는 동료들과 함께 공부했을 때 제 글이 비약적으로 좋아졌어요. 물론 재미도 있었고요. 제 문학적 자양분이 그런 환경을 통해 길러졌죠. 물론 돈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지만요.

Q. 그토록 염원하던 전업 작가가 됐다. 하지만 책에 “오히려 내가 원하는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는데, 이 생각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

A.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대학을 가거나 취업을 하면 되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뭔가 대단한 성취를 해도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의 고통은 항상 존재해요. 바라던 등단을 하고, 책을 내서 문학상까지 받았지만 행복의 지속력은 무척이나 짧아요. 그 짧은 환희 뒤에 견뎌야하는 시간들은 직장인들의 무기력한 일상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이 직업은 문자 그대로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은 전부 남들이 불러줘야 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등단만 하고 사라지는 신인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 점에서 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은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겠다’ 등의 생각을 가끔 해요. 하지만 그것을 삶의 중심에 두진 않아요.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직업이니까. 외부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자고 스스로를 많이 다독거리는 중이에요.

Q. 부산국제영화제 ‘시네마 투게더’라는 프로그램의 멘토로 활약했다.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지? 가장 좋아하는(혹은 많이 본) 영화가 무엇인지?

A.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본 영화가 있어요. 제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2002)라는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문학과 세상의 소통 방식을 다룬 영화예요. 퀴어 영화이기도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요소가 무척 많아요.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무척 좋아하는데 <빌리 엘리어트>(2000)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2008)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11)도 인상적으로 봤어요.

한국영화로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죠. (웃음)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를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친절한 금자씨>를 재미있게 봤는데, N차 관람이라고 하죠. 극장에서도 여러 번 봤던 기억이 있어요. 가장 최근에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를 흥미롭게 봤어요.

Q. 현재 <주간 문학동네>에 『1차원이 되고 싶어』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 중이다. 작가가 ‘연재를 시작하며’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은 ‘십대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앞선 두권의 소설 역시 사랑이 주된 소재다. 작가의 삶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A. 사실 20대 동안 했던 게 글 쓰고 연애한 기억밖에 없어요. (웃음) 이뿐만 아니라 부모님과의 갈등, 친구들과의 관계가 제겐 정말 중요한 문제였거든요. 돌아보면 결국 이 모든 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부터 기인한 거더라고요. 너무 사랑하니까, 너무 좋아하니까 발생한 일들이었죠. 습작을 하면서 그런 것들에 관해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작품이 쌓이면 세상에 필요한 말들을 하게 되겠지만, 보통 작가는 초기작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쓰게 되잖아요? 제겐 부모와 친구, 연인에 관한 ‘사랑의 문제’가 그랬어요.

Q. 작가 지망생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제가 계속 등단에 실패하고 있을 때, 친한 선생님께서 “너 자신에게로 향하는 절경은 너 자신만이 펼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이 제게 큰 길잡이가 됐어요. 저는 지금도 제 자신으로 향하는 절경을 펼치기 위해서 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에게로 향하는 절경은 여러분 자신만이 펼칠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따라하려하지 마시고,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마시고 나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세상과 튼다고 생각하시면서,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지금 <주간 문학동네>에서 소설을 연재 중인데, 내년 초에 책으로 발간할 것 같아요. 그리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홍보 활동을 거의 못했거든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독자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방송 활동도 사실 원래는 조금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저 자신에게 더 많은 걸 가르쳐주고,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고 편안한 작가이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며 하는 중이에요.

또 장편 소설 계약이 밀려있어요. 목표는 1년에 한권씩 책을 내는 건데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의 창작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꾸준히 책을 쓰면서 독자 분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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