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떠나는 역사 여행 콘셉트로 고대 사람들이 인간과 세상을 이해했던 방식을 알아본다. 유물과 사상이 생겨날 당시 상황을 고대인의 시각으로 서술해 생동감 넘치는 지식을 전달한다. 또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유물이 현대 삶과 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본다. 고분벽화와 암각화 연구의 권위자 전호태 교수와 함께 떠나는 역사 여행이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적 통찰을 선사한다.
이렇게 그리면 소와 사슴, 말과 곰의 생명을 동굴 바위에 붙박을 수 있다. 우리의 눈과 손으로 저들의 생명을 붙잡는 것이다. 신꼐서 이 짐승들의 능력과 힘을 우리에게 덧입혀주실 것이다. 우리에게 들소의 힘, 사슴과 말의 발, 곰의 코와 지혜를 주신다. 어떤 짐승도 두려워 않는 용기도. 이 낮고 넓은 동굴은 차갑지만, 어머니의 몸속처럼 우리를 평안히 쉬게도 한다. 이 동굴 안에서는 작고 빠른 것들도 쉽게 다니지 못한다. 우리는 이 동굴 한구석에 둔 짐승들의 머리뼈 앞에서 신에게 기도할 수 있다. 불이 있으니 들소와 곰을 생생하게 살아서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그릴 수 있다. 이 벽과 천장에서 짐스들이 떼 지어 달리고 벌떡 일어나 크게 포효하게 할 수 있다. 이놈들을 뒤쫓아 다니며 새끼와 병든 것을 붙잡을 수도 있고, 건강한 놈이라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면 된다. 달리며 헉헉거리다가 눈을 희번덕이며 우리에게 달려들어도 두려워할 것 없다. 신이 우리를 지켜주시니까. <31~32쪽>
청동이 돌보다 단단하지는 않은데, 내가 왜 이렇게 썼지? 돌보다 나은 점은 온갖 모양을 만들 수 있고 정교하게 다듬어낼 수도 있다는 거지. 돌로 어떻게 거울이며 방울을 만들겠어? 아, 하긴 흑요석으론 거울은 만들 수 있네. 하지만 거울 뒤에다 아름다운 무늬나 특별한 형상을 새겨 넣지는 못해. 돌에 비하면 청동이 더 가볍고, 뼈나 뿔과 다르게 삭지도 않지. 하여튼 특별해. 그러니 '신이 주신 새로운 돌' '하늘의 돌'이라고 부를 만하지. <87쪽>
농경·목축인의 그림 가운데는 '기하문'이라고 하는 것이 많아. 도형 모양의 글미이라는 말이지. 그 주에서 원이나 동심원은 하늘, 높고 깊은 하늘을 뜻해. 역삼각형이나 반원, 호선은 구름이야. 빗금이나 겹평행선 무리는 비를 뜻하지. 따라서 구름에 빗금을 더하면 비구름이 되는 거지. 네모나 마름모는 땅이고 검은 점은 씨앗이야. 겹마름모나 동심원이 무리를 이루는 모양은 포도 넝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특정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 그러나 문장을 이루는 이런 표현은 아직 일부만 해석 가능해. 대개는 추정이지. <151쪽>
샤먼은 국가 단위에서 소홀히 하는 개인과 가정의 삶에 관심을 보이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샤먼에게 길흉화복과 병치레에 대해 말할 수 있었고, 샤먼은 인간의 시작과 끝을 감당했다. 병약하거나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 온갖 처방에도 효험을 보지 못한 이에게 샤먼은 원인을 말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가뭄과 홍수로 고생하는 마을과 도시에서 샤먼 아닌 누구를 찾겠는가? <254쪽>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전호태 지음 | 창비 펴냄│508쪽│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