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닭장 속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다 『찰스』
[리뷰] 닭장 속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다 『찰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1.23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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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극작가이자 공연 연출가, 어린이문학 작가로 활동하는 한윤섭 작가의 첫 희곡이자 첫 소설이다. ‘찰스’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소설과 희곡 두 장르로 출간됐다. 

책은 수십 마리의 새로운 닭이 들어오고 나가는 닭장 옆의 식당 ‘성호가든’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책의 제목인 찰스는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수탉인데, 이 수탉이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개 메리와 갈등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감추는 주인남자와 어쩐지 계속 눈이 멀어가는 열아홉 살 주인 여자 사이의 부조리를 관찰한다.  

찰스가 팔굽혀 펴기를 시작한다.
주인 남자는 손질한 닭을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거야. 내가 살아남는 방법,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그러니 이렇게 운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닭고기 파는 집에서 수명이 제일 짧은 닭은 살찐 닭이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람의 목표가 되는 거야. (중략)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은, 그건 너무 비극이야. 난 그런 바보가 아니야. 난 적당히 음식 조절을 하고 적당히 운동을 해서 적당한 체격을 유지해서 늙지 않는 거야. 주인은 늙은 수탉도 가만두지 않으니까. 난 잘 알아. 
(빗을 꺼내서 머리를 빗는다) 
이렇게 머리를 단정하게 빗는 거야. 그래서 내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지. <희곡 14~15쪽>

주인 남자는 개집 옆에 있는 양동이에서 개 먹이를 퍼서 메리에게 부어 준다. 메리 정신없이 먹는다. 주인 남자. 나간다. 
“잘 먹는다. 개가 닭의 창자를 먹는다. 닭장 옆에서.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어디 있을까.” <17쪽>

“내가 어떻게 알아. 일이 힘들었나 보지. 배가 불렀거나. 이런 곳에 오는 것들은 다 똑같으니까. 그러니 똑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28쪽>

책은 오직 닭장과 성호가든에서 벌어지는 일들만을 기록하지만, 이야기는 상징으로 가득하며, 결국 인간사회 전체를 풍자한다.         

언젠가 주인의 손에 죽게 될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닭장 속에서 발버둥 치는 찰스의 모습, 메리가 닭의 창자를 닭들이 지켜보는 옆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 주인 남자가 종업원을 다루는 모습 등은 어쩐지 인간 사회의 구조적인 비극을 떠오르게 한다.
     
메리, 한쪽 구석으로 가서 똥을 누려고 엉거주춤 앉는다. 
“(힘을 주며) 밤은 낮보다 빠르게 흐른다. 그건 모두들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난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어떤 짓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 시간. 인간이나 동물이나 제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을 좋아하잖아.” <희곡 19쪽>

“난 경계를 유지할 수 있거든. 닭과 개의 경계, 사람과 개의 경계, 개와 개의 경계, 그리고 사람이 싫어하는 것과 싫어하지 않는 것의 경계.”
“알지. 경계를 잘 구분한다는 거. 네 경계란 항상 목에 달린 줄의 길이 만큼이잖아. 그게 네 경계라는 걸 나도 잘 알지. 그리고 비겁하게 그것을 목줄만큼의 자유라고 말하고, 또 목줄만큼의 경계라고 지껄이지. 목이 줄에 묶인 신세? 그런 동물이 경계를 얘기할 수 있나. 닭은 목이 묶인 채 살아가지는 않아. 그럴 바에는 죽지.” <희곡 21~22쪽>

“그게 우리의 차이야. 만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과 살기 위해서 우리 몸에 체득된 결과물이지. 인내가 항상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야. 인내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지. 인내의 달콤한 면을 모르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보이는 이 목줄이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사는 거야.” <21~22쪽>

소설·희곡 속 캐릭터들의 당연하지 않은 당연함이 추함으로 느껴지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함을 인지할 때는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짧은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말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작품.     

『찰스』
한윤섭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122쪽│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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