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현대사회의 결정적 순간들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
[포토인북] 현대사회의 결정적 순간들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2.0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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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낡은 기술'은 과거 언젠가 '최신의 첨단기술'이었다. 그런 기술은 충격과 경이로움을 자아내기도 했고, 때로는 다양한 이유로 거부되기도 했다. 복잡다단한 과정 속에서 기술은 변형과 수용을 거쳐 발전하고 자리 잡았는데, 저자는 그런 흐름 속에서 오늘날 기술과 관련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20년간 대학에서 기술사 강의를 해온 김명진 교수는 기술 등장의 배경이 되는 당대 사회 맥락과 기술 발전 및 확산 과정, 동시대 사람들이 보인 반응과 태도 등을 균형있게 서술한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과학기술사를 대중 눈높이에 맞게 흥미롭게 풀어냈다. 

구텐베르크가 고안한 나사 압착기를 써서 활자판 위에 종이를 높고 인쇄하는 모습. [사진=도서출판 궁리] 
구텐베르크가 고안한 나사 압착기를 써서 활자판 위에 종이를 높고 인쇄하는 모습. [사진=도서출판 궁리] 

오늘날까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구텐베르크 성서는 모두 스물한권이다(낱장이나 일부만 남은 것까지 합치면 49권이다). 그런데 현존하는 구텐베르크 성서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면이 있다. 필사한 책은 한권 한권 모두 다르겠지만, 인쇄한 책은 같은 활자판을 써서 만들었으므로 100퍼센트 동일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그렇지 않았다.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책을 인쇄한 구텐베르크는 '책'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나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성서를 최대한 필사한 책과 유사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는 필사본의 서체를 모방하기 위해 필요한 알파벳의 개수보다 훨씬 많은 290여 종의 활자를 만들었다. (중략) 그가 찍어낸 성서의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았떤 이유이다. 여기서 혁신적인 기술에 숨은 발명의 보수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 <19쪽> 

1908년 미국 남부의 방적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 미국에서는 영국보다 아동노동의 법적규제가 수십 년이나 늦어 20기 초에도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사진=도서출판 궁리] 
1908년 미국 남부의 방적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 미국에서는 영국보다 아동노동의 법적규제가 수십 년이나 늦어 20기 초에도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사진=도서출판 궁리] 

18세기 말에 생겨난 최초의 직물공장들은 수차를 이용했기 떄문에 대체로 경사가 급하고 물살이 센 강의 상류에 위치했는데, 이곳은 거의 대부분이 인구 밀도가 희박한 농촌 지역이어서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략) 결국 최초의 직물공장들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서 구했다. 바로 구빈원에 맡겨진 고아들을 공장 노동자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중략) 구빈원과 공장 사이의 계약에 따라 고압들을 수십명에서 100여명씩 한꺼번에 먼 시골의 공장으로 실어 나른 후, 여러 해 동안 감금한 채 숙식만 제공하면서 일을 시키는 이른바 구빈원 도제가 초기 공장 노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한 추산에 따르면 1790년대 면공장에서 일하던 노동력의 대략 3분의 1이 구빈원 도제였고, 곳에 따라서는그 비율이 80~90퍼센트에 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52~53쪽> 

블렌킨솝이 만든 톱니바퀴 기관차(왼쪽)와 브런튼의 '증기말'(오른쪽). [사진=도서출판 궁리] 
블렌킨솝이 만든 톱니바퀴 기관차(왼쪽)와 브런튼의 '증기말'(오른쪽). [사진=도서출판 궁리] 

사실 트레비식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은 이미 나와 있었다. 목제 레일을 깔거나 그 위에 얇고 긴 철판을 덧대어 보강하는 대신 전체를 철로 만든 레일을 부설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목제 레일을 철제 레일로 바꾸면서 새로운 문제가 부각됐다. 기관차의 매끈한 철제 바퀴와 철제 레일이 서로 미끄러져 구동에 필요한 마찰력을 얻을 수 없을 거라는 우려가 그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생각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의 발명가와 엔지니어들은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해결책들을 쏟아냈다. 1812년 존 블렌킨솝은 바퀴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증기기관으로 구동되는 톱니바퀴가 톱니가 달린 선로와 맞물리며 동력을 전달하는 철도를 구상했고, 비슷한 시기에 윌리엄 브런튼이라는 발명가는 심지어 말의 다리를 모방한 기계 막대로 땅을 번갈아 차서 추진력을 얻는 기관차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려는 1830년대까지 계속되다가 철도 운행의 경험이 쌓이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87~88쪽> 

센트럴 퍼시픽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네바다의 홈볼트 평원에서 철도를 부설하고 있다. [사진=도서출판 궁리] 
센트럴 퍼시픽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네바다의 홈볼트 평원에서 철도를 부설하고 있다. [사진=도서출판 궁리] 

철도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인 1866년부터다. 건설은 두 개 회사가 나누어 담당했는데, 먼저 중서부의 변경 지대를 흐르는 미주리강에서 서쪽으로 철도를 건설하는 역할은 유니언 퍼시픽 철도회사가 맡았다. (중략) 한편 반대편인 캘리포니아에서는 센트럴 퍼시픽 철도회사가 설립돼 새크라멘토에서 동쪽으로 철도 건설을 시작했다. 센트럴 퍼시픽 역시 노동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겼었는데, 건설 책임을 맡은 찰스 크로커가 시험 삼아 투입해본 중국인 노동자들이 뜻밖에 일을 대단히 잘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건설 현장에 투입됐다. 크로커는 심지어 중국 광둥 지방까지 가서 노동자들을 수백명씩 구해 왔고, 1867년이 되면 6,000명에 달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철도 건설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게 됐다. <113~115쪽> 

모스 부호를 보내는 전신 키와 모스 부호 체계. 전신 키는 전기 회로를 열고 닫는 역할을 하며, 길게 누르면 '대시', 짧게 누르면 '도트'를 보낼 수 있다. [사진=도서출판 궁리] 
모스 부호를 보내는 전신 키와 모스 부호 체계. 전신 키는 전기 회로를 열고 닫는 역할을 하며, 길게 누르면 '대시', 짧게 누르면 '도트'를 보낼 수 있다. [사진=도서출판 궁리] 

모스의 장치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하나의 전선으로 문자를 전송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데 있다. 흐르거나("on") 안 흐르는("off") 두 가지 신혼만 가능한 전류를 가지고 수십 가지 종류의 문자들을 전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스는 전신 키를 이용해 긴 신호("대시")와 짧은 신호("도트")를 조합해 알파벳을 전송하는 모스 부호를 창안했고, 이는 곧 쿡과 휘트스톤의 방법을 대신해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쓰이게 됐다. 모스는 미국 여낭정부의 지원을 받아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에 미국 최초의 전신선을 부설하고 1844년 전신 메시지 전송에 성공했다. 그가 보낸 첫 번째 메시지는 "신이 하신 거룩한 일(What Hath God Wrought)"이었다. 이로부터 당시 사람들이 전신이라는 새로운 통신 방법에 부여한 종교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124~126쪽>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
김명진 지음 | 궁리 펴냄│308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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