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순신과 제퍼슨·록펠러의 차이... 한국인은 왜 불행할까?
세종대왕·이순신과 제퍼슨·록펠러의 차이... 한국인은 왜 불행할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1.13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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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사회적으로 공적이 큰 사람의 업적을 두고두고 기리기 위한 흔한 방법의 하나가 ‘이름 붙이기’다.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문화회관, 이순신 장군 이름을 딴 이순신대교처럼 문화·교육 시설이나 대형 건축물·도로 등에는 위인들의 이름이 자주 사용된다. 이런 경향은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띠는데, 다만 평가 기준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는 도덕성이 중시되는 반면 미국 뉴욕은 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면 그것대로 용납된다.

먼저 대학을 비교해보자면 뉴욕대학교는 수많은 단과대학과 전문직 양성기관이 100여 년간 인수 합병돼 만들어지면서 단일화된 캠퍼스 없이 뉴욕 남부에 위치한 여러 고층건물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뉴욕대 XX학과로 불리기보다는 ‘스턴 스쿨’(경영대), ‘스타인하드’(교육대) 등으로 불리는데, 앞글자는 대개 사람 이름인 경우가 많다. 보통 기부금을 내면 이름을 붙일 자격을 얻을 수 있는데, 이민자로 뉴욕에 건너와 애견 사업으로 큰돈을 번 레오나드 스턴(스턴 스쿨) 역시 그런 경우다. 그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고 결국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대학건물에 이름 붙이기까지 적잖은 논란을 겪었겠지만, 뉴욕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혼했는데 (위자료 떼주고 남은) 자산 가치가 30억달러라고? 대단한 사람인걸”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뉴욕대를 나온 방송인 조승연이 “(스턴과 관련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내가 깨달은 것은, 그의 업적은 사업 수완과 부에 집중됐고, 그 외 개인사는 논외였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화시설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에 위치한 ‘프릭 갤러리’의 헨리 클레이 프릭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밑에서 잔혹한 노동 탄압을 자행한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인물이며, ‘록펠러센터’는 ‘독점’과 ‘카르텔’로 비판받았던 록펠러의 이름을 딴 건물이다. 우리나라의 ‘충무로’(충무 이순신), ‘원효대교’(원효대사), ‘을지로’(을지문덕 장군), ‘도산공원’(도산 안창호) 등의 이름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을 중시한다면 뉴욕은 화제의 인물에 열광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뉴욕 패션계의 거물 애너 윈투어 <보그> 편집장은 까다로운 성격과 고압적인 태도로 부하 직원을 혹사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적어도 뉴욕에서는 문제시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그런 면모를 인정하는 면이 강해 그의 일화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제작돼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또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역시 괴팍한 성격과 불륜을 비롯한 각종 스캔들에 연루됐지만 숱한 반대에도 미국의 금융과 상업 거래 방식을 만들어 낸 공로로 뉴요커들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도덕적으로 큰 흠이 있으면 대중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 각종 장단점을 지닌 사람을 부분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장단점을 종합해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고 남은 결과물로 판단하는 경향 때문이다. 실제로 문화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뛰어난 필력을 지녔지만, 파문 이후 그의 시가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다수의 기념관이 문을 닫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역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될 정도의 위상을 지녔으나, 성추문에 휩싸여 정치 인생이 사실상 종식됐다.

그렇다면 뉴욕은 왜 그렇게 관용적인 태도를 지니게 됐을까? 세계문화전문가 조승연은 책 『리얼하다』에서 “뉴욕에서는 역경을 뚫고 거부가 됐거나 한 분야의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면, 그가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흠이 있거나 악평이 난무한 것과 상관없이 존경받는다. 이민자의 도시 뉴욕에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거쳐야 하는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며 도둑질도 할 수 있고 남을 속여서라도 당장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의 절박성을 서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어 “뉴요커들은 대부분 자신의 꿈을 이루기 힘든 모국을 버리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독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한 가지 업적만 이뤄내더라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뉴요커들은 하나의 업적을 이룬 사람은 모든 행동이 도덕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 “(반면) 한국인은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다 보니 인생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실력에 집중하자니 자칫 ‘동물의 왕국’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고, 인성에 집중하자니 실속 없이 체면만 차리는 ‘사대부’가 만연할까 걱정이다. 장관 한명 뽑는데 청문회가 두려워 후보자 수십명이 고사하고, 총선에서 최선보다는 차악을 피하기 위해 투표하는 상황을 보면 정말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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