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당신의 애증은 무엇인가요? 『나의 영국 인문 기행』
[포토인북] 당신의 애증은 무엇인가요? 『나의 영국 인문 기행』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8.28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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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애증(愛憎). 사랑과 미움을 아우르는 이 말은 삶의 거의 모든 물질에 적용된다. 언젠가 음악가 윤상이 “음악을 하면서 큰 기쁨을 느끼지만 또 한편 가장 큰 슬픔도 느낀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에겐 음악이 애증인 셈이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가족, 애인, 친구가 다 그렇지 않은가. 모두가 애증이다.

지난 3월, 휴가 차 오타루에 갔다. 서른이 되기 전, ‘러브레터(1995)’의 촬영지인 오타루에 꼭 가보고야 말겠다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3월의 오타루는 아름다웠다. 그 특유의 건조한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하늘과 사람 키 높이만큼 쌓인 눈은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미나미오타루(南小樽) 역에서 운하까지의 거리엔 오르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도시였다.

영화 전공자인 기자에게 영화는 애증이다. 영화를 통해 가장 큰 기쁨을 느끼지만 반대로 가장 큰 슬픔도 느낀다. 그 처음이 바로 ‘러브레터’였다. 오타루에서의 여행도 그랬다. 너무 좋았지만 그만큼 슬펐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낙조(落照)를 잊을 수 없다.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의 저자에게 영국은 ‘애증’의 도시인 것 같다. 영국에 대한 저자의 양가적인 감정이 사진과 글자 곳곳에 묻어났다. 그래서 좋았다. 마냥 도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여행 에세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발자국을 따라 영국의 다섯 가지 ‘애증’을 들여다보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피츠윌리엄 박물관. [사진=반비]

다음 날에는 아침부터 케임브리지 대학의 식물원을 산책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미술관 못지않게 동물원이나 식물원을 즐겨 찾는다. 그러니 영국에 와서도 평소 습관대로 여행한 셈이다. 식물원에 다녀와서는 피츠윌리엄 박물관을 찾았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부설 박물관으로 1816년에 창립한 곳이다. 당당한 외관의 건물 안에는 티치아노, 베로네제, 루벤스, 반 다이크부터 드가, 르누아르, 세잔, 피카소에 이르는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로 호화로운 컬렉션이다. 하나하나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특히 기억에 강하게 남은 그림은 프란스 할스의 「이름 모를 남자의 초상」이었다.<23쪽>
 

교토 데라마치의 산가쓰쇼보. [사진=반비]

그 거리에 소설가 이케나미 쇼타로나 야마구치 히토미가 즐겨 찾던 오래된 양과점이 있었고, 바로 맞은편에는 인문 관련 서적을 풍부하게 갖춘 산가쓰쇼보라는 작은 서점이 있어서 고등학생이던 나는 하굣길에 종종 그곳에 들르곤 했다. 이곳에는 이즈카쇼텐 출판사에서 나왔던 세계시인전집(이었다고 생각된다.)이 구비되어 있었으며,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시집도 그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날 작심하고 전집 가운데 『브레히트 시집』을 샀던 나는 그중에서도 브레히트가 망명생활 중에 쓴 시 「후손들에게」를 반복해서 읽었다.<139쪽>
 

스토르헨 취리히 호텔. [사진=반비]

첼란은 파리에서, 작스는 스톡홀름에서 정신이상으로 괴로워하면서 망명생활을 했다. 두 시인의 편지 왕래는 1954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16년에 걸쳐 이어졌다. 그동안 두 사람은 실제로 두 번 만났는데, 그중 첫 번째 만남이 1960년 5월 취리히의 ‘스토르헨(황새)’ 호텔에서였다. 고립과 외로움의 극치를 표상했던 두 명의 유대인 시인. 첼란은 1970년 파리에서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같은 해 작스 역시 스톡홀름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157~159쪽>
 

2007년 노예무역금지법 통과 200주년 기념식에서 한 흑인 남성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반비]

'그야말로 영국이다.'라고 생각했다. ‘도의적 책임’에 관해서는 애매하고 넌지시 언급하지만 법적 책임이나 공식 사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거부한다. 이것이 현시점에서 전 세계 옛 식민지 종주국이 견지하고 있는 공통된 태도다. 아시아 침략에 대한 일본의 자세 역시 마찬가지다. 블레어 정권은 “영국은 노예무역에 대해 ‘깊은 비통함과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라고 성명을 발표했지만 공식적으로 ‘사죄’한다는 언명은 없었다.<259쪽>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가 살았던 몽크스 하우스. [사진=반비]

영국 기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특히 그녀의 죽음과 관련하여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케임브리지의 교외 그랜트체스터를 방문했을 때 그 생각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쓰기 위해서는 그녀가 몸을 던져 스스로 삶을 마감했던 우즈 강을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잠들어 있는 곳인 서섹스 주 로드멜 마을을 찾아가 버지니아와 레너드의 자택 몽크스 하우스를 보고 싶다는 마음도 점점 간절해졌다.<271쪽>

『나의 영국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 최재혁 옮김 | 반비 펴냄 | 296쪽 | 1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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