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악화일로’ 한일관계, 니이미 난키치 메시지에 주목해야”
[인터뷰]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악화일로’ 한일관계, 니이미 난키치 메시지에 주목해야”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7.18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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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게다(나막신) 가게에 놀러 온 츠야코(조선인 소녀의 일본식 이름)에게, 일본인 아주머니가 묻는다.

“오토상(아버지의 일본어 )은 그쪽(조선어 ) 말로 뭐라고 해?”

“아버지”

“오카상(어머니의 일본어 )은?”

“엄마”

일본 어느 마을의 신발가게에 조선인 노동자인 아버지와 딸이 ‘치카타비’(작업화 )를 사러 온 상황으로 시작하는 일본 동화작가 니이미 난키치의 『아버지의 나라』(1930년 )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교류를 따뜻하게 그려낸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대한 말살정책이 심화되는 때였지만, 조선의 언어에 관심을 갖고, 조선인 특유의 흰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 복장에 아기를 업는 포대기를 작품 소재로 삼으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인정하는 휴머니즘의 시점을 드러냈다. 난키치 작가 본인의 어머니가 신발가게를 운영했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은 당시 17세의 난키치가 직접 목격한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는 견해가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인 간 인간적 교류를 다룬 이례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난키치의 사상은 동화 『장홍륜』에도 잘 드러난다. 러일전쟁 당시 만주 지배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는 시대 상황을 그린 해당 작품은 우물에 빠져 죽게 된 일본군 소좌(아오키 )를 어느 중국인 가족이 구해 보살피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힐 위기에 놓이자 소좌의 도피를 돕는다는 내용을 그린다. 일본군 소좌는 도망가면서 그 집 아들(홍륜 )에게 자신의 시계를 선물하는데, 이를 통해 훗날 일본에서 재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 속에서 홍륜은 아오키가 (중국인에게 구출됐다는 사실로 ) 체면을 구길까봐 과거 보살펴 준 사실을 부인하는데, 이후 편지를 보내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은 희생과 배려의 휴머니즘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 중 중국인의 휴머니즘을 예찬하는 것은 자칫 매국노로 몰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 16세의 난키치가 매국노로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각오하고 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본이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난키치가 국가를 넘어선 휴머니즘을 그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난키치는 『벽』이란 작품을 통해 노동자(소작농 ) 계급의 애환과 농촌의 어려운 현실에 비판적 견해를 내보이기도 했다. 해당 작품은 가난한 집 아들 싱이 소작농을 부리는 부잣집 아들 오토지의 딱지를 모조리 따자 오토지의 아버지에게서 “딴 딱지를 모두 돌려줘. 어디 가난뱅이 주제에 남의 것을 넘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벽을 체감한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벽’은 그간 짝사랑했던 오토지의 사촌 여동생을 향한 마음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쳐 소작료를 받아 일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부자들에 대한 반감을 더욱 키우게 된다.

시대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이데올로기와 국가, 민족을 넘어서는 휴머니즘을 그려냈던 니이미 난키치. 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한 국내에 난키치의 동화집(『니이미 난키치 동화선』)을 출간하고, 최근에는 관련 논문을 묶어 『한국에서 바라본 전쟁과 문학』이란 논문집을 일본에서 출간한 김정훈 전남과학대학교 교수를 만나 난키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근 일본에서 출간한 논문집 『한국에서 바라본 전쟁과 문학』에서 니이미 난키치라는 일본 동화작가를 조명했다. 니이미 난키치는 어떤 인물인가?

일본 북쪽을 대표하는 작가가 미야자와 겐지라면 남쪽을 대표하는 동화작가는 니이미 난키치다. 난키치는 1913년 일본 아이치현의 한다시(市)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여러 잡지에 동화 등을 투고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는데, 그가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한 것은 도쿄외국어학교(현 도쿄외국어대 ) 영문과에 진학하면서부터다. 대표작은 『금빛 여우』 『눈깔사탕』 『장갑을 사러 간 아기 여우』 등으로 해당 작품은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25세 때는 은사의 주선으로 안죠고등여학교에서 교사로 5년 동안 근무했다. 인간과 동물과의 교감을 그리기도 하고, 자연의 순수함이나 생명의 소중함을 주제 삼아 휴머니즘을 추구하면서 꿈과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동화를 다수 발표했다. 결핵을 앓은 뒤에는 자택에서 요양 생활을 하며 집필활동에 매진하다가 병환을 이기지 못하고 1943년 서른 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생전에 그가 집필한 동화, 동요는 100여 편에 달하고, 소설 또한 수십 편에 이른다. 1994년 한다시에 니이미 난키치 기념관이 들어섰고, 연간 5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면서 국민 동화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적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주로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니이미 난키치를 조명하게 된 계기가 있나?

매년 광주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근로정신대(성 착취가 아닌 노동 착취로 위안부와 다름 )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일본 나고야의 시민단체가 한일청소년 평화교류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 2014년에는 8월 초에는 내가 한국 청소년을 이끌고 나고야시에 가서 일본 청소년과 교류하며, 조선인 징용 터 견학을 위해 나고야시 인근의 한다(半田 )시를 방문했었는데, 이동 중 버스에서 주최 측이 배부한 자료에서 니이미 난키치의 작품 『아버지의 나라』의 한국어 번역본을 처음 접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주인공과 일본인의 인간적 교류를 다룬 일본 작가가 거의 없었기에 당시 니이미 난키치의 『아버지의 나라』를 접하고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귀국해서 조사해보니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러일전쟁 때의 중일교류를 다룬 『장홍륜』, 이외에도 반전평화를 다룬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노래한 작가라고만 알려진 난키치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 작품들을 모아 국내에 소개하고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발동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 니이미 난키치의 어떤 점에 주목했는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난키치는 도쿄외국어대 시절 친구들을 통해 사회의식에 눈뜨면서 반전평화 정신을 키웠다. 또 농촌에서 자란 탓에 빈부 격차와 농촌의 어려운 현실의 모순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의 진보적 사상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난키치의 일상이 담긴 일기가 발견되면서부터다. 그 일기는 1985년 『니이미 난키치·청춘일기』란 제목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난키치는 1930년대 초반부터 프롤레타리아(노동 계층 ) 작품에 관심을 보였는데, 친구에게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잡지를 빌려 읽고 그 진보적 내용에 공감해 일기에 “문예에서 벗어나 사회과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적기도 했다. 이후 그의 일기에는 농촌의 현실,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 빈부 격차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자주 드러났다. 이런 내용을 한국에 알리고자 나는 앞서 『아버지의 나라』 외에 『벽』 『주운 나팔』 등 사회성 짙은 작품들을 모아 번역해 『니이미 난키치 동화선』을 한국에서 출간한 바 있고, 올 초에는 해당 작품들을 연구한 논고를 담은 논문집을 일본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 일제강점기 당시 『아버지(한글 ‘아버지’를 조선어 음역으로 표기)의 나라』라고 조선어 제목을 붙인 건 획기적인 사례로 알고 있다. 혹시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난키치가 조선어 제목을 사용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난키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아버지’를 조선어 음역으로 그대로 표기하고 ‘나라’만 일본어로 표기했다. 당시 일본의 속국이었던 조선의 언어 ‘아버지’를 그대로 제목에 붙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작가가 조선어 제목을 사용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것으로 『아버지의 나라』 외에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 『아버지의 나라』 외에 『장홍륜』에도 주목했는데, 이들 사이에서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가?

『장홍륜』은 아오키 소좌가 만주에서 정탐하다가 오래된 우물에 빠진 사건을 무덤덤하게 묘사한 작품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견해도 있다. 이는 난키치의 반전평화 정신이나 휴머니즘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로 주로 일본 보수층을 중심으로 이런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장홍륜』(1929년)이 아오키 소좌의 사건을 무덤덤하게 그린 게 아니라는 증거는 1년 후에 출간된 『아버지의 나라』(1930년 )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난키치는 『장홍륜』에 이어 『아버지의 나라』에서까지 중국과 일본, 조선과 일본의 교류에 있어 기존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보여줬다. 두 작품을 통해 사회적 장벽과 국경을 뛰어넘는 타민족과의 자유로운 교류를 보여준 것이다.

-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난키치의 문학에서 어떤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까?

난키치는 자국 우선주의와 그에 따른 전쟁이 강조되는 시기에 지위와 환경,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며 교류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이를 통해 개인의 가치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웠고 전쟁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고뇌를 드러냈다.

난키치의 반전·평화 목소리는 국가주의나 지역주의가 아닌 인간성 회복과 국경을 초월한 휴머니즘에 근거한 것이었다. 난키치의 반전의식과 평화를 향한 집념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지금의 한일관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시점에 중요한 메시지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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