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이중섭·백남준, 거장의 재발견...한국 현대미술을 커튼콜하다
[포토인북] 이중섭·백남준, 거장의 재발견...한국 현대미술을 커튼콜하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5.15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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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윤의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미술사학자 정하윤이 대학 강단과 대중 강연에서 전했던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관한 내용을 담은 미술교양서다. 어렵지 않게 쓰여져 대화하듯 읽다보면 어느새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주하고 싶어지고, 그런 갈망이 모여 예술의 힘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한국 현대미술은 아직 대중에게 낯선 존재다. 이중섭, 박수근, 백남준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의 경우에도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이들 작가의 작품을 정식으로 소개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계보를 훑어 튼실한 문화지식을 전달한다. 

고희동. '부채를 든 자화상'(1915).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고희동. '부채를 든 자화상'(1915).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무척 잘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희동은 중국어 역관인 아버지의 권유로 프랑스어를 배웠고, 학교에서 프랑스 도예가의 그림을 보고 서양화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1909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다만 유학시절 나머지 학습을 받았다거나 4년 과정인 학교를 5년만에 졸업한 것 등으로 볼때 재능이 뛰어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고희동은 1927년 이후로 서양화가 활동을 접었는데, 자신의 역량에 회의를 느꼈을 것이란 추측도 있지만, 당시 서양화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실제로 1959년 고희동이 귀국 후 남긴 글에는 사람들이 냄새 강한 양화물감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누드화에 부정적 시선을 내비쳤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김관호. '해질 녘'(1916).
김관호. '해질 녘'(1916).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김관호는 우리나라 서양화가 2호로, 1호였던 고희동과 같은 도쿄 미술학교를 함께 다녔다. 그림 '해질 녘'은 벌거벗은 두 여인이 강변에 서 있는 모습을 담았는데, 김관호는 대동강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희동과 달리 김관호는 일찍이 그림 실력이 출중하기로 소문이 자자했고 일본에서도 금세 실력을 인정받았다. 수제만 모였다는 도쿄 미술학교를 수석 졸업했고 당시 일본의 가장 권위있는 제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거머쥐었다. 당시 국내에도 관련 소식이 대서특필됐으나 정작 그림은 '여인이 벌거벗은 그림'이라는 이유로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당시 누드하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 때문이었다. 

이중섭, '도원'(1953무렵)
이중섭, '도원'(1953무렵).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중섭은 일찍이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 당시 여느 화가들처럼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에서 2년 후배인 아내 마사코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일본 미츠이 그룹 계열사인 일본창고주식회사 사장의 외동딸이었다. 그러던 중 태평양전쟁이 격렬해져 이중섭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놀랍게고 1945년 5월 마사코가 한국으로 건너온다. 그렇게 두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고 원산에서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1952년 일본에 있는 장인의 사망으로 처가 지원이 끊기고, 아내와 아이마처 결핵에 걸리면서 결국 아내와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게 된다. 그 무렵인 1953년 탄생한 그림이 '도원'이다. 네 가족이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사는 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중섭은 영양부족과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 홀로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 가족과 재회하지 못했다. 

백남준. 'TV첼로'(1971).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백남준. 'TV첼로'(1971).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대표작 중 하나는 'TV첼로'다. 백남준이 세대의 TV로 첼로를 만들고 그것을 클래식 첼로 연주자였던 샬럿 무어맨이 1971년 뉴욕 콘서트홀에서 연주했던 작품이었다. 백남준은 노력하는 천재로 알려졌다. 비디오 작품을 만들기 위해 1963년 일본으로 건너간 백남준은 전자회로에 관련된 책만 읽으며 해당 분야의 준전문가 수준에 도달했고 그렇게 'TV첼로'를 선보이게 됐다. 열정도 뛰어났는데,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왼쪽 몸을 못 쓰는 상황에서도 4년간의 재활 끝에 뉴욕 구겐하이미술관에서 레이저아트 회고전을 열었다. "비디오 아트 권위자가 왜 굳이 레이저아트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과만 먹는 것보다 키위나 망고도 먹어보는 게 더 즐겁고 새롭지 않나요?"라고 답하며 도전정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펴냄│260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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