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울었다
까치가 울었다
  • 관리자
  • 승인 2006.04.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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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 (수필가)


  
 동짓달이라 긴 밤 서둘러 달이 떴다.
보름이 낼모레다. 저 달이 차고 이울어 그믐날이면 음력으로 섣달이 시작되고 양력으로는 새 해가 된다. 어제의 그 해와 달이 그대로 뜨고 지지만 사람들은 2006,병술년의 시간을 이미 준비하였으리라.

 한 해를 마무리하며 미리 장만하는 정갈한 약속이 새 달력이다. 깨끗한 숫자다발, 30일짜리 묶음 열두 장이 새롭게 주어졌으니 잘 여며서 저만치 달아나고 싶은 흥분이 인다. 뭔가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그래서 누구나 새 해를 맞는다는 희망은 벅차기 마련이다.

 아울러 많이 힘들고 지칠 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우리는 주로 새로 맞을 시간에서 찾는다. 내일은 좀 다르겠지, 일주일만 고생하자, 다음달에는 회복할 수 있다하네, 내 년에는 좀 더 잘해봐야지, 더 나아지고말고······. 시간이 약이라고 이러저러한 좋은 처방이 되었다.

 매양 힘에 부치던 일들을 바루어 잊게 해주었고 스스로 무기력한 사람, 잘못 들어선 곳, 잘못 행한 것, 등등 묵은해를 기점으로 성실히 반성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한가. 더불어 서운한 일과 매끄럽지 못했던 관계도 해를 넘기기 전에 슬쩍 연하장 안부에나 술잔에다 두루뭉술 끼워서 털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홀가분하게 새 출발선에 다시 서게 될 우리는 더 조심스럽고 더 희망차다. 처음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아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만 그 절반, 아니 반의반일지라도 옮겨 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주어지기에 가는 해를 기꺼이 보내고 또 보낼 수 있다.

 올 들어 첫눈이 내리던 날도 온 나라에 널렸던 사고무친한 일들을 백지로 만들 수 있으려니 하고 좋아했다. 아니 하얀 눈에 덮여 잊혀지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말끔하게 지워버린다는 건 무리였을까. 으레 눈이 오고 난 다음날은 하얗게 고립된 사람들을 만난다.

 새털처럼 가벼운 눈발에 치인 농가의 상심이 너무 컸다. 빙판길 사고도 많았다. 그 이면에 건조하여 늘 걱정스럽던 산불, 두툼한 눈 이불 덕에 겨우내 따뜻하고 촉촉하게 지내게 될 새싹들 또한 그 온기를 깨어난 봄으로 고스란히 돌려줄 것이기에 ‘좋다, 나쁘다’ 어찌 이르랴.

  어라, 발밑에 쑥꽃이 겹겹 쌓인 눈꽃을 꽁꽁 이고 바깥세상을 아리송해하고 있다. 잊혀지면 좋은 일도 있으려니와 늘 밟히기만 했던 쑥꽃이 춥고 힘든 시간을 견디어낸 덕에 화관 중 으뜸인 투명한 사슴뿔을 부여받지 않았겠는가.

 모름지기 값진 경험은 공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충고일 테다. 많은 시간과 고통 뒤에 주어지는 덤인 것을 종종 지나쳐버렸으니 바라건대 이 우둔함이나 제발 거두어주길 기도하며 송년의 연장선상에서 새해를 준비하고 맞아야겠다.
 
 까치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젯밤 늦게 잔 탓으로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소리가 너무나 가깝고 선명하다. 낮은 보폭으로 내다보니 바로 베란다 유리문 밖 철재 난간에 발을 딛고 앉았다.

 내가 잠자고 있던 방안을 연신 쳐다보며 “깍 깍깍······.” 하고 소리치며 깨운 것이 아닌가. 나는 혹여 나랑 눈이 마주치면 내뺄 것 같아 숨죽여 바라보았으나 별 개의치 않고 연발 상쾌하게 목청을 돋우는 그 기이함에 놀랐다.
  “좋은 소식이라구?”
  “새해, 모쪼록 선한 새해를 받으소서.”                               
 

독서신문 1395호 [200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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