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 육아의 계절, 겨울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 육아의 계절, 겨울
  • 스미레
  • 승인 2018.12.18 13:5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독서에 아이와 나의 에너지가 집중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미련 없이 책 읽는 날로 활용한다. 아이가 편안히 책 읽는 맛을 알아가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특히 바쁜 주말을 보낸 후 맞는 월요일은 종일 뒹굴 대며 편안히 책을 읽는 날이 되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열일을 제쳐 두고 파자마를 입은 채 따끈한 보리차가 담긴 보온병을 머리맡에 두고 책 읽어 줄 준비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데 길어서 평소 잘 읽어주지 못했던 책들을 이 때 읽어주면 좋다. 영화도 찔끔찔끔 보면 머릿속에서 조각조각 흩어지지 않던가. 그 기분을 떠올리며 아이 책들을 함께 읽는다. 조각 모으기를 돕는 것이다.

아이가 어쩐지 나른하고 계속 책을 찾는 날. 이런 날은 루틴도, 숙제도 미뤄둔다. 괜히 다른 활동을 하자며 아이를 충동하지도 않는다. 나 역시 상을 차리거나 치우는 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음식을 시키거나 한 그릇 식사를 후다닥 만든다. 자잘한 집안일은 남편에게 맡긴다. 가스 불을 끄고, 창문을 닫고 휴대폰을 치워둔다.

목은 좀 아프지만 흔치 않아 귀한 날이다. 미혼 시절, 날 잡고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정주행 하던 여유와 즐거움이 떠오른다. 그 기쁨을 아이에게도 주고픈 마음에 설레던 날. 온종일 나긋하고 평온한, 책 정주행의 날이다.

책에 집중하는 요일이 주로 월요일이라면, 계절은 겨울이다. 활동적인 아이의 독서는 겨울에 집중된다. 추우니 덜 나가고 집에서 심심하니 책을 읽는다. 겨울이면 아이와 붙어 지내는 하루가 안 심심하냐는 질문을 유독 많이 받았다. 심심했다. 너무나 심심했다. 그러나 그 심심한 계절을 지나며 아이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일상을 관찰하고 엄마를 도우며 어느 계절보다 더 긴 호흡으로 책을 읽었다. 종일 파자마를 입고 뒹굴대는 게으름도 겨울에는 용서가 되었다.

그렇게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훅 자라있는 아이를 보며 세 번째 겨울부터는 아예 작정을 했다. 판은 이미 짜여 있었다. 아이는 어리고 차도 없는데, 밖은 춥다. 따끈한 바닥에 배 깔고 책이나 읽지, 뭐. 호기로워졌다.

아이가 원치 않던 센터 수업을 끊어 주었고, 전집을 들였다. 심심함에 한숨 쉬는 대신 재미나게 책을 읽어줬다. 먼 외출이나 대단한 놀이는 하지 못해도, 책과 일상의 뻘놀이로 하루를 채웠다. 유난히 길고 적막한 겨울밤, 별 수가 없어 책을 읽어줬다.

봄이 오면 또 밤낮 없는 외출이 시작될 터였다. 종일 에너지를 사용함과 동시에 동면하는 동물처럼 다음 계절을 위한 에너지도 모아야 했다. 새로운 일을 벌이는 대신 일상과 책에 집중하는 겨울을 살금살금 보냈다. 고맙게도 그런 겨울이 지나면 아이는 눈에 띄게 자라있었다. 혹독한 계절을 견뎌낸 겨울눈이나 꽃 몽우리처럼 겉도 속도 단단하고 기특했다. 그렇게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뿌듯함과 보람을 어디에 비할까.

겨울은 책육아를 위한 ‘짜여진 판’이다. 오갈 데 없는 겨울 한 철 책과 일상에 집중해 보기를 권한다. 물론 체력과 각오가 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심심한 피곤은 훗날의 평온을 위한 밑거름이 됨을 자부한다.

아이가 일곱 번째로 맞은 겨울. 우리는 김 오르는 유자차를 곁에 두고 한 시간 쯤 각자의 책을 읽는다. 믿을 수 없는 안온이다. 정적인 성향의 아이라면 두 살 부터도 가능한 모습이겠지만, 우리 아이는 매우 활동적인 아이다. 치열했던 겨울들이 스쳐가며 코끝이 찡 울린다.

어쩌면 아이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기에 순수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봄, 가을이면 나가 놀고 여름이면 열기에 들뜬다. 겨울이면 조금은 한적해진다.

숲 속에 살며 본 겨울의 본성이 그렇더라. 고요한 휴식기. 농부들은 수확을 마친 논밭을 놀린다.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고 물은 얼어 잠잠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올 겨울도 학원이나 연수를 알아보는 대신, 홍삼과 프로폴리스를 챙기고 중고 전집을 들인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지영 2019-01-04 12:20:52
좋은 팁이네요. 쓰신 글들 모두 마음에 와닿는 게 많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다음 칼럼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