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이 그림이 왜 '명화'인지 모르겠다고?
[포토인북] 이 그림이 왜 '명화'인지 모르겠다고?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0.11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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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태의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미술 이야기』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봤을 수많은 명화와 작품들, 하지만 누군가는 훌륭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이 왜 '명화'인지 의문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눈을 갖고 싶지만 막막해하는 사람에게 작품을 이해하는 인문학적 배경을 쉽고 친절하게 소개한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 사냥' 기원전 645년경. [사진제공=도서출판 생각의길]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 사냥' 기원전 645년경. [사진제공=도서출판 생각의길]

기원전 17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아시리아가 들어섰다. 아시리아의 유물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왕이 사자를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부조다. 당시 아시리아인들은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자와 당당하게 맞선 채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볼 수 있었다. 가장 무서운 존재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 사냥' 부조로 남은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비롯해 자연 전체에 맞설 수 있다는 확신이었고, 스스로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투탕카멘 마스크' 기원전 1320년경. [사진제공=도서출판 생각의길]
'투탕카멘 마스크' 기원전 1320년경. [사진제공=도서출판 생각의길]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부모는 누구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아케트아톤의 북쪽 궁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네페르티티(Neferriri)가 키웠다는 것 뿐이다. 그녀는 투탕카멘을 아들처럼 여겨 아케나톤이 죽은 후 왕위 계승권을 지닌 셋째 딸 안케세나멘(Ankhesenamen)과 혼인시켜 그를 곧바로 파라오에 즉위시킨다. 어쩌면 투탕카멘을 내세워 실권을 잡고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투탕카멘 즉위 2년 뒤, 그녀는 숨을 거두고 만다. 

'원반 던지는 사람' 미론, 450년경. [사진제공=도서출판 생각의길]
'원반 던지는 사람' 미론, 450년경. [사진제공=도서출판 생각의길]

'원반 던지는 사람'은 기원전 450년경 미론(Myron)이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이 조각상의 원본은 소실됐으며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모방품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조각상과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현대 운동선수들은 미론의 조각상을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따라해보면 실용적이지 않은, 원반을 던지기에 최악의 자세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미론은 실제 운동선수의 동작을 조각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냥 가장 아름다운 모양과 자세를 조합해서 조각상을 만든 것이다. 

'오달리스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14년. [사진제공=도서출판 생각의길]
'오달리스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14년. [사진제공=도서출판 생각의길]

다비치의 후계자이기도 한 앵그르는 낭만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전주의자였다. 그의 그림 '오달리스크'는 터키 궁정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 노예를 담았다. 요염한 자세를 한 여자가 슬쩍 뒤돌아보는 자세로 유명한데 곡선이 아름다우며 피부의 질감도 섬세하다. 하지만 당시 평론가들은 "고전적 아름다움이 없다"며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다. 그림 속 여인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볼 수 없을 만큼의 긴 허리를 갖고 있으며 허리와 엉덩이의 경계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왼팔도 기이할 정도로 길다. 이에 앵그르는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반박했다. 고전주의의 엄격한 해부학을 거부한 것이다.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미술 이야기』 
안용태 지음 | 생각의길 펴냄|344쪽|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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