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여성호르몬은 여성을 미친년으로 만든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알고 있다. 한 달 주기로 널을 뛰는 호르몬 떄문에 여성들은 변덕을 부리고, 짜증과 화를 내며, 퉁명스럽게 구는 ‘생리전증후군 마녀’로 돌변한다. 임신을 하면 비논리적이고 무능력해지며, 출산 후에는 위험천만하게 변화하는 호르몬 탓에 산후우울증을 겪는데 그 정도가 무척 심각해 산모인 우리 자신이나 아기에게까지 해를 입힐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완경기를 지내고 나면 우리는 크게 상심하고 우울해지며 반미치광이가 된다. 따라서 남성들뿐 아니라 전 인류가 여성들을 두려워하고, 그렇기에 꼭꼭 숨겨야 하며, 제자리를 못 벗어나게 해야 하는 존재란다. <23쪽>
또 우리는 남녀 불문하고 생리 중인 여성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 대학생들은 생리 중인 여성을 ‘슬프다’ ‘변덕스럽다’ ‘피곤하다’ ‘힘이 없다’ ‘극단적이다’ ‘징징거린다’ ‘무능하다’ ‘호감도가 떨어진다’고 묘사하고 다수가 능력이 저하된다고 여긴다. (중략) 이런 식으로 여자아이들은 호르몬 신화를 처음 접하고 다수가 초경을 ‘달갑지 않은’ ‘불결한’ ‘침범의 한 형태’로 경험하게 된다. <39쪽>
생리에 ‘질병’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두 가지를 달성할 수 있다. 첫째, 여성의 반항을 거부해 여성을 제자리에 붙잡아둘 수 있다. 앞 장에서 설명했다시피 조작된 과학의 시대에 생리 전 단계 증상으로 흔히 언급되던 것으로는 타인을 돌보고 요리, 청소 등 집안일에 대한 의지나 능력이 상실된다고 했다. 문화적으로 ‘착한 여성이 된다는 것’은 늘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중략) 이러한 이상을 달성해내는 여성의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오랫동안 자제하는 것이다. 착한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뒤엎는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으레 평정심을 유지하고 늘 과묵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111쪽>
『호르몬의 거짓말』
로빈 스타인 델루카 지음|황금진 옮김|동양북스 펴냄|448쪽|17,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