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실대는 갈대꽃 듬뿍 엮어 노래하던 가을
노을 붉게 젖어버린 언덕쪽으로 떠나보내고
보라, 바람은 다시 뒹구는 나뭇잎마져
멀찌감치 빈 들녘으로 몰아내는구나
허나 여기 뒷동산 푸른 하늘 걸치는 나뭇가지마다
촉촉하게 적시는 초겨울 빗결에
아직 떠나지 못한 우리의 가을날 사랑
며칠쯤 잇대며 끈덕지게 머물고 있지 않으냐
오늘 나 홀로 저무는 계절 큰 나무 기둥에 기대어
조용히 서성대며 산모퉁이 저만큼 돌아서는 뒷길로
서둘러 달려가지 못한채 작별의 발자국 더듬으면
저렇게 강물 내게 손뻗어 나긋이 넘실대며 흐르고
어느새 한 해 기다란 끝자락으로 조용히 넘어와버린
마지막 당겨 온 반짝이는 달력 한 장
다시금 새해 향해 우리들 벌떡 일어서게 하는
그렇구나 희망찬 날 재촉하는 저 빗소리,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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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은
눈동자 말갛게 빛나던 물고기들아
그물에 걸려 마구 끌려와
알 빼앗기고 내장도 잃어버린 너희들
오늘은 소금 하얗게 뒤집어 쓰고
어두운 독안에 주저 앉은 고통의 나날
푹 곰삭은 뒤 다시 얼굴내밀며 태어났구나
새우젓 명란젓 창란젓 새옷 갈아 입고
이 계절찾아와 으젓한 자리 널찌감치 차지하니
내 안 가득 들어찬 미움 다시 곱게 가라 앉혀
새세상 밖으로 푸근하게 다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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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갔던 날에
분주한 도시 저만치 떼어놓고 성큼 돌아 나오면
미사리 긴 강가 손짓하며 늘어서는 미류나무
아침 이슬 퉁기며 피어나는 물안개 마냥 휘감고
냇가로 송사리 떼 여전히 알몸으로 반기는구나
먼 산 바라보며 한껏 발돋음하는 해바라기 큰웃음
담장밖 늙은 호박도 덩그라니 제멋부리며 딩굴고
노란 가을 옷자락 활짝 펼쳐 우리 반겨 안아주는
용문사 커다란 은행나무 해묵은 역사 번쩍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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